네가 빌려온 고양이 같아서 좋았어 가만히 고른 숨만 내쉬고 있어도 떡하니 눈에 튀어버리는,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 할 여유조차 주지 않고 떠나버리는, 멍청한 사람들은 대체 뭐가 저리 신나냐는 듯한 표정으로 초점 없는 눈빛으로 은근히 구경을 즐기는 네가 좋았어 돌아갈 곳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물어보려 다가가면 곧장 도망갈 것 같은 네가 좋았어 글쎄 왜 넌 고마움을 모를까 아무렴 어때 이제 그런 것 따위는 상관 없이 넌 나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됐는걸
기다려봐 좋은 생각이 났어 널 부르는 내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널 자꾸만 잡아두는 게 사랑이지? 아무래도 그런 게 틀림없어 나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랑 같은 거 해본 적이 없어서 뭐가 사랑인지 몰라 뭘 해야 사랑인 건지 몰라 사랑이라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몰라 그저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안개 깔리듯 몰려오는 이름 하나쯤 가져보고 싶었는데 그게 전부일 뿐인데 나는 벌써 몇 년 후 내 일기장 속 네 이름을 본 것만 같아
일이년 가량의 나날들을 넌 과연 얼마만에 지워낼 수 있을까 어디까지 사랑에 절망하는 꼴을 허락할까 나와 긴장감 넘치는 시합을 해보자고 내 낭만주의 허상은 언제까지 버티다가 산산조각이 날까 죄다 너무 오만한 생각인 거 알아 악몽의 시작일 수도 있는데 그 처음을 너로 두고 싶은 걸 어떡해 다른 사람 말고 빌려온 고양이 같은 너였으면 좋겠는데 어떡해 어차피 상처나 안겨줄 연이라면 너와 이다음에 만날 곳은 악몽 속이겠지 그것도 잘 알아
그러니까 그래서 별 상관이 없다는 거야 이딴 생각이나 하는 게 나 이미 너한테 익사하는 중인가 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지만 사과를 해 이 해로운 절망에 끌어들여 미안해 그렇지만 난 아직도 하고 싶어서 못 참겠거든 난 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서, 아니 이젠 알고 싶지도 않아서 책임질 필요도 딱히 못 느끼거든 기분만 내자 네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그냥 죽어가는 네 눈동자가 좋아 나를 위해 이용당해줄래 다른 사람은 안 돼 그냥 네 옆에만 있어
letter/Dear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