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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parting

스친 바람처럼

by 순애_ 2024. 8. 21.

삼류소설에나 나올 법한, 그런 보잘것없는 사랑이었어요. 그는 나의 존재도 모르는데도 오직 나만 그를 열성적으로 좋아했던, 그런 사랑 말이에요. 그의 그림자는 늘 길었어요. 그래서 멀리서도 그의 흔적을 좇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근데 나는 매번 지켜보는 것밖에 하지 못해서, 그래서 나는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녹빛의 잔디마저 질투했어요. 그 형상은 결코 내가 쥘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에요. 그러나 현실에는 그의 궤적만을 집착적으로 붙잡는 나만이 홀로 존재할 뿐이었죠. 모든 사정거리의 밖에서. 나를 스친 바람이 부디 그에게도 스쳐주기를 내심 바라면서. 그리고 그가 스친 바람의 궤도를 좇다가 마침내 나의 존재도 발견하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아무런 접점이 없는 우리가 이렇게나마 이어 지기를 바라면서.
그는 과연 자신의 시선에 이토록 갈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까요. 만약 알고 있다면, 그는 나의 이런 음침한 사랑을 경멸할까요. 있잖아요, 나는 그 경멸이 두려워서 여태 그의 그늘에 닿아본 적 한 번 없었어요. 이런 나에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피어나는 사랑을 체할 정도로 삼키는 것밖에. 이 끝내지도 못할 사랑 덕분에, 나는 여전히 포화하는 중이에요. 찰나로 시작해 전부가 되어주었던 나의 신기루. 때로는 지난 기억이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기도 합니다. 내게는 그 기억의 출처가 당신이고, 바람이 옷깃을 들춰내며 비집고 들어오는 계절에도 남은 기억 덕분에 살만했어요. 당신에게도 그때의 우리가 그리 아프기만 한 기억은 아니었으면 합니다. 다시는 사랑 같은 것으로 우리가 마주할 수 없겠지만, 모든 날 당신의 평온을 빌어요. 부단히 행복하세요. 당신에게 사랑과 다정을 배운 날들이 헛되지 않게 나도 열심히 행복 챙겨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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