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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싹트는 마음

by 순애_ 2024. 10. 26.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소외될 때, 그 애의 머리맡으로 편향되어 있던 내 세계의 대부분도 함께 등을 돌렸다. 사랑을 할 때의 나는 자주 고립된다. 이 참담함은 나만 아는 거라, 속 터놓을 곳도 없었다. 손으로 뚝 끊어 희재와 분절되는 상상을 한다. 내 세계의 대부분은 이미 저쪽으로 넘어가 있기 때문에, 나는 완전히 고립된 상태가 된다. 그런 식으로 두고 온 세계가 사랑할수록 많았다. 우리의 맞닿은 면은 어떤 형태를 가졌을까? 얼마만큼의 점성을 가지고 서로를 얽을 수 있을까? 우리를 우리로 붙들고 있는 것들. 연약한 셈 치면 얼마든지 연약하다고 칠 수도 있을 것이다.

희재가 나를 흘리고서, 흘린 줄도 모르고 계속 걸어가는 꿈을 꾸었다. 간밤의 꿈은, 예상컨대 그 애의 사소하고 무심한 태도로부터 파생된 거였다. 언젠가 정말로 나를 흘리고 모른 체 그냥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도 찾지 않는 골목길 깊숙 한 곳에다가. 혹은 파도가 코앞까지 밀려오는 어느 해변에다가. 궁금하진 않지만, 언젠가 알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희재의 속눈썹을 떠올린다. 완만한 곡선으로 뻗친 눈썹. '속'이란 글자가 붙는 건 좀 은밀하지. 속마음, 속살, 귓속, 입속 등 더 알고 싶은 게 많았다. 그 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거, 어쩌면 속눈썹 때문일 거였다.

희재는 자주 무심하고, 가끔씩만 다정하다. 별안간에 내 시는 너무 친절하다고 했던 사람을 떠올린다. 설명이 너무 많다는 걸 완곡히 돌려 말한건데, 나는 영문도 모르고 슬펐다. 친절하지 말아야지. 다짐은 물거품 같은 것이라, 쉽게도 부서졌다. 그 애의 눈빛은 가끔 시 같다. 문장의 인과관계 없이도 얼마든지 나를 울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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