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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Goodbye

20231209

by 순애_ 2024. 5. 25.

너 얘기 들었어. 우리 마지막이던 날 네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던 이야기. 그리고 네가 지금 어떻게 사는지. 지금처럼 괜찮아지기까지 네가 얼마나 힘이 들었었는지. 전부는 아니겠지만 많이 들었어. 내가 없던 너의 날들, 그때의 너.

너에게 작년에 보내고 싶은 말들이 있었어. 일 년 내내 목 안 가득 밀어 두고만 있었던 말들. 더는 네 숨에 붙어살지 않을게. 우울한 눈으로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얼굴을 하지 않을게. 죽고 싶단 말을 별거 아닌 거처럼 들리게 하지 않을게.

일 년 내내 삼키던 말을 새해가 지나 겨우 한다. 왜냐면 나는 아직 가끔 네 생각에 멍해지고 네가 보고싶어서. 더 괜찮은 사람으로 죽고 싶어서.

맞아, 네가 내 전부이던 때가 있었는데. 서로의 이름을 나의 누구라고 부를 만큼 네가 전부였는데. 너를 사랑할 때는 사실 매일 울었다. 이 사랑이 끝나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그 끝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모든 마음을 미련 없이 잘 피하던 나에게 너는 그대로 박혔어. 오히려 우리는 서로를 잘 몰랐을 때 더 사랑했던 것 같아. 너는 내 슬픔을 알아챘을 때 그때 도망갔어야 해. 너는 한참이나 나를 품고 있다가 신음하는 내 마음을 내 발밑에 두고 떠났으면 안 돼.

그런데 이제 어디서 우연히 너를 마주쳐도 못 알아볼 것 같다. 자꾸 네 얼굴은 흐릿해지고 그냥 나눴던 몇 개의 대화나 같이 봤던 영화나 같이 듣던 노래 같은 것들만 선명하다. 내년 이맘때쯤에는 너를 다 잊어버리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

이렇게 보면 사랑이 참 부질없다. 제일 사랑했던 너는 절대 못 잊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흐릿해지는 순간들이 온다. 올겨울에는 유독 밖에 나가는 날들이 많아져서 겨울이 너무 춥게 느껴졌는데, 이젠 추워도 네 얼굴이 선명해지진 않는다. 그게 유독 나를 더 슬프게 해.

아직도 삶이 버거워서 자주 울고 있을까. 마음이 가라앉는 날들이 자주일까. 그래서 몸에 좋지 않은 음식과 돈을 네가 다친 마음만큼 쓰고 다닐까. 그때의 너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향하길 택했을까. 너를 사랑하는 데엔 도달한 게 맞을까.

어디에 있을지, 누굴 사랑하고 있을지, 살아있을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의 나는 12월 31일의 네가 살아있길 바라. 열두 달을 어떻게든 버텨내서 잘 지냈다고 조금 무서웠다고 사랑도 했다고 끝내 울면서도 웃어주길 바라.

어쩌면 매일이 지옥일 수 있을 테고 사는 게 죽을 만큼 괴로워지는 날도 많겠지. 사람 앞에 무너지고 길을 잃어버리는 날이 자주일지도 몰라. 단 한 순간도 괜찮지 않을 수도 있겠지. 내가 나에게, 스스로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날이 수도 없이 빽빽할지도 몰라.

그래도 우리 꼭 살아서 보자. 나는 너를 절대 미워하지 않아. 그렇다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말을 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네가 앓았던 마음의 시간만큼 너를 존중하고 좋아해.

네가 어떤 날을 견디고 있든, 어느 곳에서 사람을 만나든 네가 거기 있음을. 나도 너를 떠올리고 있음을. 날이 저물고 해가 뜨는 그 저녁과 여명의 시간만큼 애틋하게 아낀다.

살아줘서 고마워. 살아서 보자. 나는 그거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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