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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20221020

by 순애_ 2024. 11. 6.

너의 위로에 어울리는 반응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입꼬리가 움직이지 않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어간다. 진심으로 건네준 말들이 튕겨져 나가는 걸 느낄 때마다 참 부질없다고 느끼겠다. 나도 네 긍정적인 말들과 따뜻한 성격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꽤나 애썼는데. 세상 예쁘게 말하는 너에게 티끌만큼의 행복이라도 안겨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마음이 변하지 않는 건 참 어려운 것 같다. 나와 똑같은 분신이 해주는 말이라면 모를까. '세상에는 정답이 없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난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의 말에 하나하나 반문을 하고, 과연 정말 나를 이해하는 걸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지쳐서 끝나버린 대화가 내 속에선 끝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끝에는 또 어김없이 '왜 그랬지' 하는 후회와 이렇게 또 제자리에서 식은땀 흘리는 나에 대한 혐오가 남는다.

끝나지 않는 생각 때문에 기분을 풀어 보려 꺼낸 농담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영양가 없는 미소만 억지로 지어본다. 이겨내보려고 마주 본 나의 아픔에 또 똑같은 아픔이 차오르는 기분이 든다. 이런 내가 안쓰럽고 답답하다며 바라보는 너의 눈마저 나에겐 수많은 타인의 기대들 중 하나이고, 결국 또 하나의 부담이 되어버린다. 나를 사랑할 타이밍을 이미 놓쳤으니까. 내가 괴물이 되어버린 건 맞지만, 나를 괴물로 대하는 것 같은 너에게도 탓이 있다고 하면, 난 정말 괴물이 되어버리는 거겠지. 행복한 너의 모습에 내가 더 불행해져 간다면 정말 나는 패배자가 되어가는 거겠지. 너조차 내 옆에 없었다면 난 이미 포기했겠지만, 이제 그만둬도 돼. 나 안 죽어. 안 죽을게. 그냥 내 감정 쓰레기통을 자처해주던 애착 인형을 하나 잃은 걸로 할게. 알잖아, 나 하도 이렇게 살아와서 익숙해. 그래도 네가 나에게 그 정도 밖에 안되는 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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