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없이 무언가를 해본 게 언제였더라. 네가 나와 함께 숨쉬다 사라진 그 자리에는 환상통과 후회만 남는다. 사랑을 미처 다 주지 못했던 사랑도 있었고, 사랑을 너무 혼자 쏟아부었던 사랑도 있었지. 늘 날 향한 사랑은 결핍이 되었고, 많은 것을 내어주었다가 다쳐버렸던 내 마음이 불쌍해서 마음을 주지 말 걸하고, 아까웠던 적도 많았다. 사랑을 주고 허해진 내 마음을 알아채고 채워주는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또 철저히 외로웠으니까.
사랑도, 사는 것도 똑같다. 매 선택의 순간에 눈치 보기 바빴고, 한 번도 용기 있었던 적은 없었다. 두려운 무언가가 있었는지, 또 감정 낭비하기 싫다는 핑계를 대는 게으름이었는지. "괜찮아, 그 순간의 너에게 최선이었잖아"라고 말들 하는데, 그렇게 최선이었던 것 같지가 않다. 내가 충분히 고민했던 게 맞긴 한지,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게 존재하진 않았던 건지 괜히 생각만 많아지는 요즘이다. 그래도 그때의 내가 그 정도의 마음으로 할 수 있었던 건 그거뿐이었던 게 맞겠지? 그러면 지금의 마음이 그때와 같지 않아서 생기는 후회는 쓸모없는 건가? 늘 변하는 게 사람 마음이고, 선택하는 그 순간의 마음이 영원하지 못할 텐데, 그러면 후회는 영원한 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사는 이 세상에서 정답이라는 건 없다. 최선만 있을 뿐, 완벽한 해결책이라는 건 없고, 최고의 방법을 찾아 도달하는 것, 그뿐이다. 우리는 살면서, 최선에 대한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부터 하고 싶은 최선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한 학문, 활동에 열심히 몰두한다'의 가벼운 최선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그런 쉬운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남에게 피해주면서 핑계로 내세우는 최선에 대한 이야기다.
최선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그리 이기적이고 무책임했던가. 나에게는 최선이었던 선택이 상대에겐 최선이 아님에도 모자라 최악에 다다르게 할 수도 있다는 걸 망각하고 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만큼 상대를 내 세상에 맞춰 가둬서는 안 된다. 맞지도 않는 크기에 억지로 몸을 구겨 넣다 찢기고 다치는 게 정녕 최선이었을까. 최선은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한 자기 보호도 아니고, '이만하면 되었다'하는 자기 위안이 아니다. 때론 누군가를 대신해 돌을 맞고, 때론 불구덩이 속에 제 발로 뛰어드는 일이더라도 '함께'여야 비로소 성립되는 가치인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 정의감을 구현해 내라는 게 아니다. 당신의 최선이 상대의 최선을 망치지 않길. 상대의 최선을 악으로 만들지 않길. 서로의 최선을 방해하지 않고 배려하는 게 최소한의 최선이 된다는 것이다.
최선은 선택이 아니라, 살아있다면 필수로 지켜야 하는 것.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를 보여라.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최선을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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