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내일이 두려웠고, 희망 없이 반복되듯 꿈은 열심히 부서지고 있어서. 용기는 주르륵 흘러가고, 초가 타오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켰던 불은 아슬하게 정지해 있어서.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스치고 아침에 본 태양이 유난히 눈부실 때면, 반쯤은 가라앉은 나와 햇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잎사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한동안 살았다. 가끔 죽었고 또 가끔은 살면서. 계속해서 창문을 열었다. 언젠가는 그곳을 타고 다정한 무엇이 진짜가 되지 않을까 해서. 여전히 불면 날아갈 듯 가볍지만 결코 하찮지 않은 사실 하나. 빛은 언제 봐도 똑같은 빛이라는 것. 그럼으로 언제든 나의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계속 작아지고. 어딘가로 주르륵 흘러가고.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같고. 사람은 뭐 이렇게 연약한지. 삶은 삶이고, 나는 나인데. 눈을 뜨면 나는 울고 있고 내가 살아가는 오늘은 저만치 멀어지는 중이었다.
마음이 아파지는 일. 나도 모르겠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고장난 마음인 건지. 잃은 게 있다면 뭐고, 잊은 게 있다면 뭔지. 나아지는 중이라고 믿어도 낡아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만 같다. 아닐 텐데. 이게 내 전부는 아닐 텐데. 진심으로 아니어야 할텐데. 이 기분에 속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울하고 슬프고 물에 젖은 듯 몸이 무거워지는, 문득 나를 초라하게 하는 말과 생각들에 잠식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또다시 암흑. 짙은 어둠. 내면이 연약해 지는 날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부서지는 중인데 어떻게 온전히 서 있을 수 있는지. 어쩌면 당연한 일. 우울은 그럴 수 있는 일. 깨어나 울고, 자기 전 울고. 꿈속에선 누군가에게 쫓기고, 현실에선 나에게 지게 되고. 결국 도망을 선택하는 나. 그렇다면 이런 나는 나아지지 못한 나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어야 한다고. 살아 있으니까. 놓지 않았으니까.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거면 나의 최선은 다한 게 아닐까. 언제나, 어느 날이나 내 최선은 나였으니까. 살았으니 된 것이다. 죽지 않고 또 하루를 버텼으니까. 사는 일은 버텨내는 일.
그냥 다 내려놓고 오늘 하루 5분이라도 행복해져 보자. 단편적인 순간을 모아 시간을 채워도 좋으니 살아갈 힘과 버틸 힘을 찬찬히 충전해보자. 이마저도 부담스러운 날이 있다면 그땐 마음껏 무너져도 괜찮다. 내가 나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은 나답게 눈치 보지 말고 살아가줘. 그 누가 모진 말로 나를 깎아내린다 해도 내가 내 찬란한 삶을 응원하면 그만이다. 내가 무너진다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도 오직 나일테니까. 힘내도, 힘을 빼도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만큼은 무엇을 해도 괜찮다. 다 그러고 살지 못하니, 충분히 특별한 존재가 될 거다. 상처를 방치하지말자. 치료하지 않는다는 건 끌어안고 살겠다는 마음인거다. 상처는 이기고 지는 경기가 아니다. 싸우려고 하지말고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하자. 나를 아프게 하는 존재가 가득한 곳에서 버티려고 하지말자. 행복의 뒷모습만 보일 뿐이다. 쫓아가다가 몇 번이고 넘어졌으니까 떠나게 내버려 두자.
도망칠 수 있을 만큼 도망가자.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지만 봄은 올테다. 벚꽃이 제일 먼저 피는 나무를 보러 가자. 그 나무 밑에서도 견딜 수 없어지면 계속 도망가는거다. 아무도 내 대답을 바라지 않는 곳으로 가자. 사람들은 도망가는 나를 보며 여행자라고 부를 거다.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 근사한 미사여구 없이도 나는 내 이름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