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알고 있었어. 애써 모르는 척 했던거야. 내가 말을 돌릴 때마다 어두워졌던 너의 표정을 난 선명하게 기억해. 나한텐 선택권이 없었어.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숨을 쉴 수 있었으니까. 서서히 지친 눈빛으로 식어가는 마음에 갖은 이유를 댈 걸 당연히 예상했으니까. 처음엔 다 좋지. 좋은 줄 알지. 조금만 지나도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 모든 것들이 아무렇지 않지 않아 보일 걸 알아. 넌 왜 그렇게 예민하고 불행해 해? 넌 왜 불완전하기만 해? 나한테 당연하기만 한 내 불행과 우울이 옮겨가는 걸 볼때마다 씁쓸함을 느끼다가도 이런 날 사랑해줄 수 있을까에 대한 작은 기대를 하겠지. 불확실하기만 한 미래에 확실한 게 하나라도 있다면 몇초라도 더 살고 싶어지니까. 대신 그에 대한 내 무조건적인 사랑은 나의 면죄부이며, 그에게 느끼는 죄책감은 내가 도망가지 않게 해줄 족쇄가 될 것이다.
이내 곧 내 불행과 우울은 너한테도 당연한 것이 되겠지. 힘내라는 문자의 길이는 줄어들고 애써 너도 내 불행을 피하려고만 하겠지. 나랑 만나는게 너무 힘들다 우는 너에게 난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어차피 내 불행은 당연했기에, 이미 익숙한 일이라서 더 해줄 말이 없었다. 이런 나에 대한 자기혐오를 도저히 멈출 수 없다. 나는 나를 잘 아는 내가 싫다. 치부를 들키기 싫지 않냐고? 아니, 오히려 앝은 동정과 연민이라도 느끼며 날 가여워해주길 바란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니까 내가 치유해줘야지. 이 아픔을 내가 보듬어줘야지' 이런 하찮은 자신감으로 날 떠나지 않길 바란다. 내가 절실히 옆에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걸 분명히 알게 해주고 싶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나한텐 하나도 당연하지 않으니까.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본 적이 언제였더라. 그저 당장 붙어 숨 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건데 난. 누군가의 행복을 먹고 살아야만, 그래야 나에게 살아야 할 가치가 생길 것 같다.
diary/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