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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2023

20231215

by 순애_ 2024. 9. 29.

이별을 겪을 때 흔히들 '떠났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두 사람이 동시에 사랑의 시절로부터 떠날 수도 있을까? 이를테면 협의 이혼 같은 거. 그러나 대부분의 이별은 필연적으로 한 사람이 남겨지는 형태를 취한다. 남겨진 나는 생각한다. 우린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오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다. 덕분에 아무것도 하질 못했다. 이별하면 응당 무기력하기 마련이라, 기한 내에 넘겨야 할 것들을 다 미뤄버렸다.

예전의 메시지를 올려다본다. 이별 직전 말고, 좀 더 위로, 위로, 그 애가 지금보다 다정했던 때로. 그 무렵 나눈 대화들은 너무 소중해서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정갈하게 정돈해서 간직해야지, 마음먹는다. 구백칠십만자. 그중에 날짜를 빼고, 이름을 빼면, 우리가 나눈 대화는 대충 오백만자 정도 될 거였다. 오백만자. 소화하기 쉽지 않은 숫자다. 장편 소설 한 편을 12만자에서 14만자로 치니까 우리는 최소 마흔다섯 편의 장편소설만큼 마음을 나눈 셈이다. 거기다가 따로 주고받은 편지와 이메일을 더하면, 더 많겠다. 주고받은 사진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무려 이천사백장이다. 스토커처럼 돌연 미쳐버리는 바람에 이런 걸 일일이 세어본 건 아니고, 저장하다 보니 저절로 수량이 표기되어 나왔다. 오백만자에 이천사백장.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마음이다. 과연 말이 잘 통하긴 했지 우리. 처음부터 그랬다. 둘 다 종일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음에 호감이 얼마간 작용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카페에서 엉엉 울다 말고, "이젠 지워야 하는 커플앱 속 캐릭터가 불쌍해"라고 말했다. 회심의 마지막 농담이었는데, 그 애는 웃질 않았다. 그걸 보고 우리가 정말 끝났음을 나는 알았다.

그 애와 함께하면서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다. 행복하단 말을 수용하게 되었고, 좀 반듯하게 살아보고 싶단 욕심도 생겼다. 그 애만 곁에 있다면, 나는 어떤 휘청임도, 어떤 절망과 나락으로 떨어지는 괴로움도, 쓸쓸함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생에 가장 큰 괴로움은 고독이었는데, 그 애를 만나면서는 그걸 느낄 틈이 없었다. 그 애가 나를 이해하려고 하는 그 모든 제스처들이 나를 고독과 불안으로부터 건져내었으므로, 나는 그 애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는 더 자라고 싶었졌다. 그 애는 나를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소중했다. 너무 소중해서 옆에 꼭 붙들어 놓고, 지키고 싶었다. 결국 그러질 못했지만.

나는 완성된 채로 살고 싶었다. 그 애가 보여준 세상이 너무 평화로워서, 슬쩍 거기 속하고 싶었다. 그동안 휘청였던 게 다 꿈이었던 것처럼, 모른 척 단단한 땅에 편입해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애는 내 세상으로부터 달아났고, 나는 다시 폐허가 되었다. 별안간에 꿈에서 깨어난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잠을 잤다. 깨어보니 다시 현실이었다. 나는, 나는 다시는 꿈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이런 건 너무 잔인하잖아. 거리마다 꽃이 피었다. 제발 빨리 만개해라. 제발, 제발. 빌었던 게, 다 나도 모르는 새에 이별을 직감해서였다고 생각하니,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일주일만 빨리 폈더라면 우리는 뭔가 달랐을까? 벚꽃이 만개한 거리를 보여 주고 싶었다. 그 애는 내게 별을 보여주고, 나는 그 애에게 꽃을 보여주고. 그러면 우리는 언제까지고 사랑일 수 있을 줄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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