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했나. 변하지 않았나. 우린 꼭 그런 것들을 생각했어. 마치 우리가 계절 그 자체인 것처럼. 너에게 보답을 하려면 내가 행복해져선 안 되나, 겨울을 지나 봄으로 가면 안 됐나. 아파서 네가 좋아졌고 아파하는 걸 알아채준 너라서 더 좋았는데. 나의 섬세함은 어느새 끝이 닳아간다. 보듬어주겠다 다짐했던 것들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고 허물을 벗겨낼 때마다 움츠러드는 아이가 있으니까. 평생 뒤쫓아도 영영 잡지 못할 것 같은 소매가 있어. 너나 나나 매일같이 처음 보는 분신들을 탄생시키니, 줄어들지 않는 간극은 당연하겠거니 하지. 영원하려면 성장을 멈춰야 한대서, 와중에 네가 지어다준 약 처방에 우울이 다 나은 것도 미안해하는 중이야. 바보 같이. 표면적인 우울에 속은 기분이 들 거야, 원래는 나랑은 다른 결의 애구나 생각이 들 거야, 우린 닮았다고 했으면서 온갖 억지 뿐이었나 싶을 거야. 그래 내가 너였다면 아마 그럴 거야.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던 내가 더 좋을 지도 몰라. 물때 낀 화장실이나 대충 치우며 너만 기다리던 내가 그리울지 도 몰라. 그때엔 정말 네가 주던 사랑에 숨 막혀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툭 건드리기만 하면 눈물 나고 약해빠진 정신에 나사 풀려서 몸살 감기 따위나 펄펄 앓았어.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돌아갈 곳 없는 애처럼 굴었어. 좁아져버린 침대엔 더 파고들 구석도 없어서 네 몸이나 죄다 헤집고. 툭하면 새벽 중에 깨서 몇 분이고 널 데리고 이상한 말만 하며 잠결을 헤맸어. 그 헛소리를 다 들어주던 네가 아무래도 많이 좋았나, 혼자선 집 앞도 잘 안 나갔어. 미안, 고장난 데가 너무 많았어서 나부터 고치기 급해서 이제서야 너를 돌아보는 내가 원망스러울까. 불그스름한 손 마디마디와 굳은 살 투성이인 발도 뒤늦게 봤어. 타고나길 뾰족하다는 관절 뼈들한테까지 미안해 해볼래. 식어버린 국물의 기름막 마냥 둥둥 떠다니다 한 번에 걷혀 버린 게 겨우 내 우울인데. 너한테 보답하기 위해 겨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어. 변했겠지만. 변하지 않을게, 예전처럼 얕은 들숨 한 번에도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될게. 공허에 계절 같은 건 타지 않는 사람이 될게. 약간의 불안마저도 한껏 끌어안던 나는 악착같이 살고 싶었구나, 사랑 받고 싶었구나. 슬프지만 그때로 하여금 나는 입에 거품물고도 사랑받는 기분을 똑똑히 배웠던 거야. 입술 끝까지 차고도 흐를 그 포만감을 기억할 수 있게 된 거야. 나약해진 채로 속절없이 사랑하던 나였단 거. 아플수록 사랑이 벅차진다는 건 다른 누구 아닌 내가 가장 잘 아니까.
diary/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