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riting/pain

겨울의 내가

by 순애_ 2024. 7. 25.

나는 여전히 겨울이 좋아 나이를 먹어도 시작보다는 끝을 좋아하는 건 변하지를 않더라 끝은 언제나 서글프고 아프고 고통스러웠지만 시작은 두렵지만 어설픈 설렘이라도 있지 하지만 나는 늘 죽는 것보다는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어 이상하게도 계속되는 영원 같은 건 관심이 없고 그 후가 뭔지 알 수 없는 끝이 좋더라고 누군가에게도 죽고 싶다는 말 한번 입 밖에 낸 적 없었지만 어김없이 죽고 싶어질 때면 죽고 싶다는 말이 가득한 문장들을 썼어 내 문장에 살고 싶다는 말은 없어도 내가 쓴 문장들이 살아있었으면 했거든 죽고싶다는 말은 힘이 없다는 걸 알아버린 터라 많은 것이 어렵지만 죽고싶다는 말 없이도 죽은 문장까지 아꼈어

그런데 요즘은 문장을 쓸수록 내 속의 뭔가가 고갈되는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죽은 문장들을 쓸까 봐 너무 겁이 나 죽을 문장들이 두려워 애써 불안한 숨을 불어넣기보단 그저 그대로 두며 어디론가 날려보내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겠지 돌고 도는 겨울을 사랑하며 언젠간 올 끝도 기다리고 사랑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거야 여전히 겁많고 위태로운 나지만 나는 내가 문장들과 함께 살아 가길 바랐어 하지만 그런 내 바람은 이뤄지지 않는 염원이었던가 너는 내 바람을 짓밟고 말았지 살아야 하지 때문에 사랑을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나는 또다시 죽은 문장들로 일기장을 가득 채워

겨울은 겨우 살면서 서글퍼 네 다정이 겨우 나를 살게 했다는 말을 믿니 추우니까 마음이 시리다 더는 글을 못 쓰겠어 쓸만한 마음이 남지 않았어 나 죽으면 음지 바른 곳에 묻어줬음 해 추워도 해는 여전히 싫거든 너는 죽어가는 마음에서 우리를 봤니 나는 여전히 우리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거든 어떤 감정들은 그냥 두면 사라지기도 하는지 궁금해 요즘은 우울할 일 없이 우울하고 공허할 일 없이 공허하거든 울고 싶지 않아 눈을 자주 비비고 불안한 마음에 손톱을 물어뜯어 그래도 고요한 이 마음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날카로운 페이지 가득한 책에 일부러 손가락을 베이기도 해 내가 사랑하는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아니 사랑으로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이제 내게 더는 그런 감정이 없는데 차라리 네가 나를 미워했으면 해 미움은 사랑보다 더 오래가니까

'writing > pai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우울이 널 잡아먹어  (1) 2024.07.28
사랑했던 선생님께  (0) 2024.07.26
사라진 출구  (0) 2024.07.24
질 나쁜 연애  (0) 2024.07.22
불신의 이유  (0) 2024.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