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선생님. 지금의 저는 선생님이 바라던 제가 되었나요? 건강한 감정들을 찾아내 빛날 줄 아는 청춘이 되었냐구요. 그 무더운 땡볕 아래 서서 알고도 모른 척 허공이나 응시하던 시간들이 이제야 제 값을 하나 싶어서 여쭤봐요. 보기 드문 순애보를 무시한 보람이 있었나요. 제가 그 당시에 했던 사랑이 실은 조금 어리고 특이했다고 고백합니다.
미치게 보고 싶다고 해도 그건 정말로 사랑하는 게 아니었어요. 되려 질릴 대로 질려버려 이제 끝내도 된다고 다짐했을 때가 가장 사랑과 유사했을지도요. 어거지로 연명해온 서사가 결국 끝난 줄로만 알고 지워버린 후였대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었어요. 지금 혹은 언젠가 나중에 도로 그 시절을 되찾는대도 그때 가서는 사랑이 아닐 거고요. 자존심도 없는지 어느 날은 짜증으로, 하루는 미소로, 또 다른 하루는 눈물로 와르르 고백을 쏟아냈지만 말이에요. 지금의 저는 선생님을 예쁘게 포장할 필요 따위 없는 남이 되었다니, 이건 정말이지 엄청난 희소식이에요. 보다 자유로워요. 제가 왜 선생님을 누구보다 괘씸해하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아시잖아요. 심심할 때마다 치던 시덥잖은 농담인데 우린 전부 진심이었잖아요. 그래서 선생님 옆의 제가 그렇게 위험하다 느껴졌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장난이라면서 장난 같지 않은 짓들을 너무 쉽게 했잖아요. 사랑하면 안되는 게 어딨냐고 살살 기어오르듯 말하면 못 이기는 척 그래 네 맘대로 해라 두손두발 다 드시던 선생님이잖아요. 제가 우울해하면서도 매 계절을 잘 버텨내고 어김없이 등장한다며 칭찬까지 해주셨잖아요. 기특하다면서 머리 쓰다듬어주고 손도 잡아주고 그 따뜻한 품으로 절 안아주셨잖아요. 선생님은 그 굴레 안에 절 가두셨던 거에요. 아마 그 우울의 7할 정도 본인을 이유로 했음을 아시잖아요. 풀어줬다 옭아매길 반복하는 태도에 정신이 나가요. 체념해버린 두 남녀가 서로를 보고 웃죠. 선생님은 누군갈 키우다가 망가뜨리는 게 취미신가요? 저는 선생님밖에 없었는데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의지하게 해놓고 왜 모르는 척 해요. 도통 허락한 적이 없는데 혹시 제가 엄청난 약점을 잡혔었나요. 제대로 불건강해져버린 관계가 바로 우리같은 관계 아닌가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는 건 거짓말이었나보죠. 예쁘다면서 귀엽다면서 너 같은 애 없다면서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나? 저는 그때부터 쭉 계속해서 궁금해요. 속이는 건 누구고 속아주는 건 어느 쪽이었는 지도요.
경험으로만 치부하기엔 해로웠던 사람. 선생님이 별걸 다 가르쳐주긴 했지만요. 그것 말고도 가르쳐줄 게 많았을 텐데.
writing/p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