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간 나는 사랑에 관해 골몰했다. 애초에 적고 싶었던 장면들은 손도 대지 못한 채로였다. 아랫배 부근에서 일정한 온도로 몸을 데우는 허기가 자꾸만 나로 하여금 사랑 근처를 배회하게 만들었다. 사랑의 정체를 조금 더 명백히 밝힐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별안간에 나를 떠난 너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나는 사랑 때문에 자주 아팠다. 바느질이 서툰 바람에 찢겨져 너덜너덜해진 곳을 잘 기워내질 못했다. 그렇게 헐거운 구석을 볼 때면, 가끔 사랑이 좀 쉬운 거였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럼 너를 납득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또 슬퍼진다.
사랑도 요리나 가구를 조립하는 일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와 방법이 명시된 설명서가 있다면 어떨까. 사실은 사랑이란 게, 상대와 상관없이 늘 비슷한 모양이라면 그건 또 어떨까. 그렇다면 나는 너한테 사랑에 이를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줄 수 있었을 거였다. 함께 사랑을 졸여내면서, 가끔은 끈기 있게 나사를 조이기도 하면서, 결국엔 더 잘 사랑하게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저 우리가 헤어져야만 했던 걸 후회하는 듯, 그런 상상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구태여 명명하자면, 보편적이고 획일화된 사랑이라고 부를까.
그러나 유일하지 못한 것도 과연 사랑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순 없을 것이다. 너에게 사랑은 조금 모호한 감정이었을 거였다. 내 눈을 보다가 불쑥 치밀어 오르는 감정, 사랑이란 말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목이 간지러 울 때 느끼는 허기 같은 건, 명백히 사랑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제 나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어떤 이유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지 따위를 파고들기 시작하면 금세 또 영문을 알 수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명확한 기준선이 없다 보니, 그냥 대충 얼버무려 이쯤부터 사랑일까. 하고 짐작하는 수밖엔 없던 것이다. 나는 이런 무책임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랑하게 되는 순간, 동시에 그게 사랑임을 깨닫기를 바랐다. 사랑인지 아닌지 쓸데없이 고민할 필요 없이, 그저 최선을 다해서 사랑할 수 있는 관계이기를 바랐다.
언젠가 너랑 사랑의 정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긴 있었다. 우린 많이 취했고, 대화는 쉽게 휘발되었다. 본질에 다가가기는커녕,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자각하질 못했다. 무책임한 대답만 늘어놓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뭐가 있었더라. 없으면 안 되는 거? 같이 있으면 좋은 거? 이 사람만 있으면 어떤 불행도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건 사랑이 가진 일면에 지나지 않았다. 아주 틀린 소린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맞는 말로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코끼리의 기다란 코만 가지고 코끼리를 논할 수 없듯이, 사랑을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랑이 가진 여러 가지 얼굴을 수용해야만 했다. 이를테면, 질투나 연민, 괴로움, 서운함, 권태, 무력감, 책임감, 의무, 약속 같은. 이것들을 배제하고는 결코 사랑의 실마리를 풀 수가 없다.
네가 간과한 것은 이 지점 어디쯤에 있었을까. 궁금하지만 이제 그것을 물어볼 넌 내 곁에 없다. 대답해줄 네가 없으므로, 이젠 혼자서 답을 유추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네가 나의 마음에 빗대어 본인의 사랑을 가늠하려 애썼듯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명백히 사랑인 마음과 명백히 사랑이었던 마음 사이에 어딘가를 조명하다보면, 이번에야 말로 사랑의 정체에 대해 조금 더 명확히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그 정체와 마주했을 때, 나한테는 부족하기만 했던 네 사랑이 너한테는 최선이었으면 어쩌지 싶다. 그 두려움을 뚫고서 알게된다 한들 네가 없는데 무슨 소용인지 싶다가도 너를 다시 붙잡을 수 있는 명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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