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이었다. 모든게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던 그 때,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네 크고 넓은 등이 한없이 작고 초라해지며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아이처럼 엉엉 소리를 내며 내 손을 붙잡던 그 투박한 손을, 온기를 내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비 맞은 개처럼 온몸을 덜덜 떨며 미안해, 잘못했어를 연신 되풀이 하는 그 물기 머금은 목소리에 마음이 한없이 여려져 나도 왈칵 눈물을 쏟아내 버렸다. 결국 그 물기 머금은 목소리에 나는 또 져버렸다. 진짜 우리가 헤어질까봐 안절부절못하고 기다리기만 했다는 네 마음이 너무 순진해서, 헤어지는 상상조차 안된다고 금방이라도 죽을듯이 울먹이는 너를 끌어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두 번 다시는 마음 약해지지 않으리라 마음 먹으며 다시는 없을, 행에 한 번 뿐인 기회를 주자고 그렇게 납득하지 못하는 내 머리를 다독였다. 이미 마음이 약해져 버린 그 순간 이성적인 머리를 절대 이길 수 없었다. 후회하는 한이 있더라도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 날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더더욱 이성적이었을 것이다. 그 빗속을 뚫고 내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너를, 이게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들을 잔뜩 얼굴에 뒤집어 쓰고 있는 너를, 이렇게 사무치도록 기억하게 될 줄 몰랐다. 비 오는 날을 몸서리치도록 싫어하는 내게 너는 참, 비 같은 사람이 되었다. 한동안 우기가 계속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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