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는 말을 달고 사는 걸 보면, 숙명인가 싶긴 하다. 힘든 게 적성인 인간. 사실 나의 본질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조울은 그저 변덕으로 치부된다. 조울보다 우울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힘든 애로 보이고 싶진 않다. 자기 방어인지 유기에 대한 불안감인지 모라겠지만 자연스레 괜찮은 척을 하게 된다.
실제로 힘들기만 한 건 아니고, 특히나 세상 가볍게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나의 진정성을 평가받고 싶지 않다. 나에게 산다는 건 무섭지만 큰 용기를 내고 있는 증거이기 때문에. 내가 믿을 건 흘러가는 바다와 하늘 같은, 불변하는 것들뿐이다.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수많은 마음을 갖고, 견디겠다는 이야기이다.
애정 어린 관심은 늘 고맙고 항상 새로운 감동을 주지만, 그 관심은 대부분 기대로 바뀌었고, 내가 남들에게 가지는 관심 또한 기대가 되어 결국 날 아프게 해서 비극으로 끝나기도 했다. 나에겐 나도, 남도 사람이라는 건 항상 어렵고 낯선 존재였다. 사랑마저도 영원하지 않은 한낱 일시적인 감정이고, 그저 내 약점이 되어 이용당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난 역설적이지만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며 살아가고 있다.
나에겐 상식같이 당연하게 예의인 일들이 남들한테는 한참 생각해서 해야 되는 것들임을 알고 나서 나의 회의감은 더욱 커져갔고, 깨닫고 나니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돌아오는 답은 뻔한 것들뿐이었다. 내가 기대하는 반응이길 바라는 것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렇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딱 그 반응. 남들을 다 고치거나 날 고치거나. 어느 하나 할 수 없는걸 알아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 질린다. 너무 많은 것들을 사랑한 탓일까.
싫어하는 사람과 엮이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하고 나를 위한 방법이겠지만, 그렇다면 나에게 남는 건 겨우 몇몇일 거고, 그럼 난 그 몇몇을 향한 기대는 더 커질 거다. 그들이라고 매 순간 완벽하지 않을텐데, 나는 도박 마냥 모든 걸 걸겠지. 생각해보면 그건 그들한테도 부담이 될 테고 나에게도 일희일비하는 감정 낭비가 될 것이다. 그래서 절대 지킬 수 없는 유토피아적인 생각으로만 남겨둘 뿐이다.
내가 감정 낭비라고 생각하는 기대하고 실망하는 과정이 무의미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지만, 만족과 실망을 오가는 그 모든 인간관계가 계산적이게 느껴진다. 그래서 기대를 버리는 방법을 찾다 보면, 남을 덜 사랑해야 하고 그러려면 날 더 사랑해야 하고. 결국 또 본질로 돌아왔다. 시간은 항상 지나가고 추억의 잔향은 늘 옅어지니까 매일 잊혀가며 살아가고 있지만, 평온해 보였던 오늘 하루도 난 굉장히 치열했다.
diary/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