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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2022

20220927

by 순애_ 2024. 4. 22.

맺고 끊음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을 정말 싫어했다. 확실하게 결론 내리지 못하는 사람은 답답해 보였고, 애매한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정, 사랑 따위를 목숨이라고 생각하자면, 꾸역꾸역 연명해나가듯이 잡고 있는 관계는 정말 쓸모없다는 거다. 그렇게 내가 그은 선들이 거미줄이 되어 얽혀 날 조이긴 했어도, 어리석게 명확하고 확신 가득한 관계들이 꽤나 마음에 들었었다. 어느샌가, 내가 우정 따위, 사랑 따위라고 부르던 것들이 내 목숨보다 소중하고, 내 전부를 걸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존재가 되었다. 또, 때론 유한하지만 무한한 것 같은 기다림, 무의미하고 불확실한 선과 실없는 웃음 같은 흐릿함이 현명하다는 것도 안다. 믿음 같은 것도 없어도 된다. 있다는 게 조금 웃긴 이야기일수도.

어떻게 보면, 불안이 인간의 본질일 수도 있다. 아무것도 제대로 알 수가 없는데 무엇을 어떻게 믿는가. 그저, 순간의 표현이 확신을 주고, 그 확신의 연속으로 살아가는 거다. 많은 불안과 답답함을 감수하고도, 진심이기에. 그럼에도, 난 어린 시절의 날 이해해야 한다. 상처투성이의 불쌍한 녀석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어였을 테니까. 장미에게 가시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에게 우정과 사랑이 전부가 되지 않았을까. 달랐다면, 유한한 인간관계를 얻었겠지만, 겨우 연명하듯이 잡고 있던 관계들이 여전히 하찮았을거다.

가을이 왔다. 나에겐 마치 사랑 같은 거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가을이라고 말할 수 있나. 입추? 입추라고 선선한 가을의 향기가 불어오던가. 우리 사귀자. 우리 연애할래? 이런 말들을 시점으로 사랑을 시작했다고 할 수 없다. 1일이 결코 사랑의 시작이라 할 수 없다. 날짜 세기는 의미 부여를 위한 가장 쉬운 수단일 뿐. 내 가슴이 저릿하게 너로 가득채울 그 즈음이 사랑. 남녀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수많은 사랑이 모순된 마음 같다. 확실함을 갈구하지만, 진심일수록 한없이 더 흐려지기만 하는 그런. 내 심장을 꺼내어 보여줄 순 없으니까. 지금도 내게 다가와 다정 어린 말을 하는 너는 또, 사랑일까 아닐까. 수많은 것들을 감수하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있고 싶은, 그렇게 깊어지는, 흐릿하지만 느껴지는 가을 같은 사랑일 거다. 나도 좋다. 달이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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