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은연중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무언가들이 있다 예를 들면 공기라던가 신이라던가 그런 갖가지 것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겠다며 애를 썼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잡아 보겠다며 발버둥을 쳤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아 믿을 수도 없는 것을 믿어버리고는 왜 믿었냐며 나를 자학했다 과연 사랑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왜 나에겐 그것이 보이지 않고 그저 허상처럼 느껴지는가 있으면 살 수 있다던데 나는 없어서 죽어야 하나
사랑이라는 것이 그랬다 보이지 않아도 은연중에 사랑이 가득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공기가 가득해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사랑 또한 그런 줄 알았다면 네게 사랑을 보여달라며 발악하는 여자로 남진 않았을 텐데 나는 아무리 발악해도 보이지 않는 사랑에 허우덕대며 너에게 요구했어 보여달라고 네 사랑을 쥐어짜내서라도 보여주면 내가 좀 나아질까 해서
사랑은 기대를 부르고 그 기대는 또 욕심을 부르고 욕심은 전부 채워지지 않아서 외로움을 데려왔다 외로움은 사랑을 더 부족해 보이게 만들고 부족해 보이는 사랑은 나를 괴롭게 만드니까 결국 사랑은 나를 괴롭게 하는 거지 아니, 실은 내 잘못이야 사랑을 한 게 잘못이지 아냐, 빠지려고 빠진 건 아니었잖아 어쩌다보니 사랑이었는 걸 뭐 어쩌겠어 지나고 나니 이미 사랑이고 내 머릿속엔 전부 너였는데 난 그 덕에 괴로워진 걸 누굴 탓 하겠어 전부 내 탓인거지 뭐 그러게 난 왜 사랑을 했어?
같지도 않은 관심에 지나치게 기대하고 자꾸 나를 상처 내는데 알면서도 또 기대하는 나는 내가 봐도 너무 한심했다 처음부터 말할 걸 그랬지 어차피 우리 헤어지고 어차피 서로에게 상처로 남을 거면 이왕 남는 거 예쁜 상처로 남아보자고 너무 깊지는 않더라도 딱지 정도는 생겨서 볼 때마다 조금 아려올만한 그런 상처로 내가 너무 사랑에 문외했다 이젠 돌이킬수도 없는데 어쩌지 나는 떼면 뗄수록 더 곪아지는 그런 상처가 될게 너는 내게 어떤 상처가 될래?
writing/p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