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이 하필이면 우울이라니. 남들보다 더 우울하고 우울함을 잘 느끼고 우울할 수 있는 게 썩 유쾌하지는 않다. 타고난 기질을 고치는 방법이 있긴 할까. 신께서는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주신다고 하시던데 나는 내 그릇이 작아서 이 정도도 버겁게만 느껴진다.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신 것 같다.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 낸 건 나였다. 우울의 본체를 가지고 그 난리를 떨고 있었으니. 이래서 쓸데없이 밤이 긴 날이 너무 싫었다. 결국 손쓸 새도 없이 빠져버린 윗니들은 결국 누군가의 슬픔이 되어 버렸다. 찰나의 단잠에 빠져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손짓들은 누군가의 고통이 되어버렸고, 빠진 윗니들을 가볍게 여기던 마음은 슬픔이 되어 내게 돌아와버렸다.
낭창한 목소리로 수화기를 들어 올리며 장난스럽게 받았던 그 전화 끝으로 들려오던 당신의 목소리가 축축하게 젖어 슬픔을 고할 때, 해사하게 웃던 입꼬리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때, 어쩌면 그 단잠 속을 깊게 다시 들여다보면 당신께서 그 자리에 계셨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또 어쩌면 나의 당신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내게 대신 찾아와주셨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부디 너무 오래 슬퍼하지 말라고, 부디 당신의 오랜 영면에 놀라지 말라고. 그렇게 내게 대신 찾아오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의 당신도 조금만 슬퍼하기를. 미화된 기억을 부디 추억이라 부르는 일이 없기를. 추억은 짧고 기억은 짜다. 더군다나 미화된 기억은 짜다 못해 쓰다. 당신은 부디 그 쓰디쓴 기억은 그저 짧은 경험으로 치부해 버리길.
writing/p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