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기억나? 네가 처음으로 내게 지난 상처들을 털어놓던 날.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야. 사랑을 넘어서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게. 이 사람만은 내가 어떻게든 지켜줘야겠구나.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살지 않게 해줘야지. 혼자 무언가를 앓지 않게 해줘야지. 어쩌다 죽고 싶어지는 날이면 내 이름 세 글자가 따라붙는 탓에 결국에는 살아야겠다, 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줘야지.
네가 괜찮다는 말을 쏟아내며 살다 결국 탈이 나버렸던 그 날, 밀려오는 서러움은 이내 너를 삼켜버렸고, 텅 빈 속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발악했던 시간들은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렸지.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괜찮다는 말도 습관처럼 뱉다 보면 너 자신조차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서럽게 울던 모습. 뭐라도 욱여넣어야만 했다던 네 속은 아무리 털어도 끝없는 먼지만 가득할 뿐, 여태 무엇을 욱여넣었던 건지 알 수 없었던 고요한 밤. 너는 왜 그토록 이겨내야 하는 시간들만 보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있지. 가로등 불빛 하나에도 울먹이게 되는 날. 어떻게서든 무언가 손에 쥐려 해도 모래를 쥔 듯 전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도 칼바람에 몸을 웅크리듯 자꾸만 어깻죽지가 안으로 말려들어 가는 그런 날. 그때마다 네가 꼭 나를 먼저 찾았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굳이 힘을 내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되고 싶어. 모두 그럴수록 힘내야 한다며 너를 재촉할 때, 나는 너의 온몸을 와락 끌어안으며 이제 조금 풀어져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 내 마음 앞에서는 애쓰지 않아도 내가 감히 굳건히 사랑해주겠다고, 네가 종종 짓는 살굿빛 미소를 따라 걷다 보니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는 일쯤은 너무도 간단한 일이 되어버렸다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매순간 사랑이 두려웠어. 뒷걸음질치는 건 기본이고, 사람을 믿으면 족족 절망을 얻었기에 쉽지 않더라. 하지만 너를 보는 순간 알았지. 곧 시작되겠구나, 결국 사랑하게 되겠구나. 그리고 그 예상은 딱 맞아버렸어. 너를 알게 되니 더 깊어지는 마음은 어쩔수가 없더라. 어쩌면 무모한 짓일지도 몰라. 사랑이 그렇잖아. 때로는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같은.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사랑하게 됐으니까,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많은 게 늦었으니까, 그럼 별수 없지 않나. 사랑해야지. 넘치는 사랑을 건네줘야지.
상처투성이인 너를 사랑해. 표현에 서툰 너일지라도, 불안에 자주 떠는 너일지라도, 행복을 쥐여주는 순간 행여나 놓칠까 겁부터 먹는 너일지라도, 한순간도 빠짐없이 깊숙이 사랑해. 그러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 무언가에서 도망가고 싶은 날에는 내가 같이 도망가줄게. 그토록 두려워하는,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혼자를 제일 두려워하는 너를 절대 홀로 놔두지 않을게. 알잖아, 나 애초에 지키지 못할 약속 안 하는 사람인 거. 반드시 지킬게. 약속도, 너도, 우리도. 일렁이는 것들 앞에 혼자 두지 않을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평온을 한아름 안겨주고 싶은 사람. 이제 나랑 같이 있자. 계속. 계속 같이 있자. 행복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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