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보내다가도 불현듯 내가 떠나가는 상상을 하게 된다는 사람. 그런 자신이 해가 되지 않을까, 네가 아니었다면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 더 많은 날을 행복해하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들 탓에 끝없이 가라앉는 사람. 사실 나는 그때마다 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연구하다 꼬박 밤을 지새운다. 선명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 더 많이 전해줄 수 있을까. 사랑은 분명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지만, 깊어지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랑이라고,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누군가 사랑이 뭐인 것 같냐고 묻는다면 한치에 망설임도 없이 네 이름을 말할 만큼 당신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면 될까. 나는 있지, 네가 불안해하는 순간에도 빈틈없이 당신을 사랑한다. 네 불안까지 사랑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마음껏 확인해도 좋아.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물론이고, 너여야 하는 이유와 네가 나의 일상이라는 것, 이런 것쯤은 몇백 번 반복해줄 수 있다. 나는 그냥, 네가 많이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면이 더는 괴롭히지 않았으면, 꿈을 꾸지 않고 잘 잤으면 좋겠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내 앞에서 전 연인 얘기하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 보면서 전에 만나던 사람과 닮았다며 어깨를 주저앉혔을 때, 밥을 먹다가도 그 사람이 좋아하던 음식이라며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을 때, 술에 취해 그 사람 이름을 집에 돌아갈 때까지 불렀을 때, 내 손을 잡으면서 나 같은 친구가 있어서 좋다며 변하지 말라고 당부했을 때. 나는 전부 빠짐없이 너 좋아했어. 잘 생각해봐. 내가 왜 네가 부르면 30분 안에 달려갔던 건지, 내 가방에 왜 두통약이 늘 있었던 건지, 저번에 우리 같이 친구들이랑 술자리에 앉아있었던 날, 이러다 우리가 사랑이 될 수도 있겠다는 말들이 나왔을 때, 나는 왜 마냥 너처럼 웃지 못했던 건지. 나 한 번도 너랑 친구인 적 없었어. 나는 계속 너 좋아했어. 이 말을 하는 지금도 그래. 일단 우리 지금 만나자. 내가 갈게. 보고 싶어.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 우울 속을 유영하던 나의 손목을 잡아 이끌어 사랑한다고 말해준 사람. 그런 네 숨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올 때면 나의 밤이 온기로 가득해진다고 하면 믿을까. 불안이 습관이라는 핑계로 자꾸만 사랑을 확인하는 내게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당연하게 끊임없이 증명해주고, 내 작은 기침 소리에도 모든 행동을 멈춘 채 온 신경을 내게 돌리는 너. 사랑에는 늘 끝이 있어, 라고 말하며 또 한 번 튀어나오는 행복에 대한 나의 불안을 있는 힘껏 안아서 잠재워주는, 지독한 불행 속 주인공이라 믿는 나를 기어코 끌어올린 유일한 나의 구원자.
너와의 모든 시간이 내내 욕심 같았던 지난 여름날.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손을 잡으며 그 예쁜 입꼬리에 포근한 미소를 띄웠지. 아마 그때였던 것 같다. 정말 또 한 번의 사랑인지 헷갈렸던 마음이 단번에 사랑으로 단정 지어진 게. 그 후로도 사소한 행복조차 불안이 동반하던 나를 위해 밤새도록 마음을 읊조려주던 사람. 귀찮은 내색 한 번 없이 매번 마음을 꺼내 증명해주던, 내 이름을 습관처럼 부르다 세상의 것들을 전부 내 이름으로 발음하는 실수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나의 낭만. 우리가 단순한 인연이 아니라 어떻게든 만나게 되는, 영원을 품은 운명이라고 믿게만 들어버리는 힘을 가진 나의 유일함. 혹시 나의 너는 알까. 사실 네가 내 두 손에 확신을 쥐여준 날부터 줄곧 내 기도는 너라는 걸.
나는 말이야. 이제 막 사랑이 네 이름 세 자 같고 그래. 네 예뿐 입술에서 사랑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들어. 어쩌다 너는 나를 사랑하게 된 건지. 또 어쩌다 나는 그런 너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어쩌다 우리가 유치한 약속을 해가며 사랑할 수 있게 된 건지. 사랑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그리고 그건 어디를 돌다가 우리에게 머무르게 된 걸까.
너와 나 사이에 부정적인 것들이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 말에 그런 순간이 와도 함께 할 거라는 사람. 줄곧 사랑이라 믿던 것들은 소란스럽게 떠나갔는데, 너만은 그러지 않을 거란 믿음이 오늘도 나를 살게 해. 어쩌다 한 번씩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널 무슨 수로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 다시 사랑이란 걸 하게 되면 어떻게든 꼭 더디게 사랑하자고 다짐했던 날들은 진작에 연기처럼 사라졌고, 무수히 늘어놓던 부정들은 이제 조금도 내 목을 간지럽히지 않는다.
나는 요즘 사랑이란 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연스레 따라붙는 네 이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언제나 사랑은 내게 며칠 밤을 꼬박 지새워 풀어야만 하는 숙제와도 같았는데, 너는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을 보이지 않게 덮어버리고는 이내 사랑의 정의를 바꿔버렸지. 행복과 뚜렷한 경계가 있던 나를 유일하게 종일 행복이라고 불러준 사람, 세상에 있는 예쁜 단어들을 내 이름처럼 불러주는 사람. 그런 당신을 보고 있으면 내가 마치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이 먼 길을 걸어온 것만 같아.
맞아, 나는 불안이 습관이야. 나를 지키는 방법이 유일하게 도망이라고 생각하는 아주 비겁한 사람이고. 애초에 끝이 두려워 시작점을 서성거리다 돌아선 적도 있어. 그러다 또 어느 날 시작되기라도 하면 수없이 혼자 질문을 던진다. 괜찮을까, 감당할 수 있을까, 끝이 보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왜 그렇게 상상하며 억지로 대비해두려고 하냐 묻겠지.
근데 솔직히 그런 게 더 무섭지 않나. 어쩌면, 만약에, 이런 것들. 그리고 너에게는 특히 내가 그런 사람이라 더 무서웠어. 내 불안이 해가 될까 봐, 당신을 사랑하면 안 되는 첫 번째 이유가 될까 봐.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너를 꿈꿔. 모든 건 끝내 괜찮아진다는 말을 믿고 싶어지고, 너의 행복에는 내가 내 행복에는 당신이 당연하게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두 손을 모으기도 해. 여전히 끝없이 자라나는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 같은 건 몰라.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해. 사랑이 아닐 거라고 매일 부정하면서도 네 모든 날이 궁금하고, 어떻게 해야 네 하루가 될 수 있을지 틈만 나면 고민하는 게 사랑이 아니면 뭐겠어. 그러니까 나는 이미 늦은 거야. 내게 주어진 모든 행운을 팔아 너를 지키고 싶을 만큼, 네가 설령 내 불안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 해도, 너를 사랑해.
내가 우울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면 온갖 다정한 단어들을 가져와 어떻게든 나를 끌어올리는 너, 행복이라는 글자를 발음하면 어색해 하는 나를 가만히 보다가 이내 손을 잡아 이끌어 예쁜 것들 앞에 데려다 주고 이게 행복이라고 알려주는 너, 넝쿨처럼 과거가 내 온몸을 휘감고 있는 걸 보고는 나보다 더 이 악물고 끊어내 주려 했던 너. 어떻게 모를 수 있었을까. 나는 이미 전부 알고 있었어. 솔직히 처음부터는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네가 하는 행동들이 마냥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 근데 사실 무서웠다. 또다시 사랑이라는 걸 하게 될까 봐. 하지만 결국 이게 이렇게 되는구나. 그래, 그냥 얼른 와. 나도 보고 싶어. 오늘은 내가 먼저 안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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