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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love

나의 뮤즈

by 순애_ 2024. 5. 9.

계속 사랑해도 되는지, 그럴 자격 같은 게 있는지 끝없이 의심하는 내게 당신은 왜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 수십 가지 이유를 나열해 주는 사람. 문득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밤이면 내 팔을 잡고 끌어당겨 어떻게든 구해주는 사람. 나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조건 없이 사랑을 퍼부어주는 당신을 보면 한없이 작아져. 남들과 달리 평범하지 못한 사랑을 했던 탓일까. 사랑 앞에서는 매번 구질구질해졌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아직 너무 선명한 탓일까. 인연인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악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탓일까. 나는 자꾸만 평범한 사랑은 내 몫이 아닌 것만 같고, 사랑을 외치는 당신은 마치 찰나일 것만 같아. 가끔 생각해. 당신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내가 지난 모든 것들을 겪기 전에 만났더라면, 누군가의 앞에서 그리고 사랑 앞에서 주저앉는 일을 반복하기 전에 당신을 먼저 사랑했더라면 조금은 달랐을까. 눈 앞에 보이는 사랑을 앞에 두고도 불안함을 느끼는 일. 저게 정말 내 것인지 고민하는 일. 손에 쥐었다가 사라져버리면 어쩌지, 하며 걱정하는 일. 이런 건 전부 겪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랬더라면 지금처럼 당신이 사랑을 줄 때 온전히 받아들이기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린아이처럼 울며불며 지레 겁을 먹고 몸을 웅크리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늘 그렇듯 당신은 똑같이 말하겠지.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인 거라고. 곧 우리가 사랑이고, 사랑이 우리니까 다 괜찮다고. 내 불안까지도 사랑한다는 당신 앞에서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지만 사실은 나도 당신을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어. 그래서 불안한 거야. 누구나 해보지 못한 것들에는 두려움을 느끼잖아. 내가 딱 그래. 지금 당신이 내게 주는 사랑이 낯설어. 또 그러면서도 당신이 아니면 누굴 사랑이라 부르나 싶고, 참 못났지. 못나도 한참 못났지. 근데 이 불안정한 것들 속에서도 나는 당신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해. 이래도 되는지 매일 의심을 하면서도, 찰나일까 두려워하면서도, 이미 나는 당신을 진하게 사랑해. 그래, 결국에는 이 말이 하고 싶었나 봐. 사랑해. 나도 당신처럼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있어.

아직도 사랑을 확인받았던 날이 생생해. 당신은 그때 기억나?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굴던 나, 그런 나를 보며 웃던 당신. 이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거라며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던 내게 앞으로도 오늘처럼 헷갈리지 않게 확신을 주겠다고 말하던 사람. 나는 당신과 함께하고 있는 지금도 안일함 하나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건 그날 덕분이라고 생각해. 나는 딱 하나의 모습만으로도 오래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인데, 그날이 딱 그렇거든. 하지만 도망이 버릇인 나는 사랑하는 당신을 두고도 여러 번 도망을 꿈꿨어. 당신을 그리고 우리를 망치게 되면 어쩌나, 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찰나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불안함을 증폭시켰지. 하지만 당신은 그때마다 내 손을 더욱더 세게 잡는 사람. 그런 불안함에 며칠을 지새 우다가 결국 도망을 택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 사이에 이별 같은 건 없다며 최면을 걸어주는 사람. 사실 나는 도망치고 싶은 게 아니라 누구보다 이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걸, 그러면서도 방법을 몰라 도망을 택하는 나를 유일하게 알아주는 사람. 원한다면 기꺼이 나보다 더 어두운 사람이 되어 내가 사는 세상에 빛이 있다는 걸 알려주겠다는 사람. 가끔 생각해. 내가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됐을까. 또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걸까. 나의 아픔을 뻔히 알면서, 구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걸 알면서, 어떻게 당신은, 이런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랑한다고 하는 걸까. 그래서 당신이 미워. 사랑을 믿게 하는 당신이 밉고, 내가 당신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게 싫어. 여태 해온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하는 당신이, 당신 미래와 내 미래가 같은 미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당신이 나는 너무 미운데, 계속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고 싶어. 이대로 전부 멈추고 싶어. 당신이 그랬지, 당신은 내 집이라고. 어느 날에는 피난처가 되어주기도 하겠지만, 결국에는 내 집이라고. 도망치려 하더라도 당신이 내 집이기 때문에 집 안에서는 도망칠 수 없지 않겠냐고. 근데 있지, 그때 말 못 했지만, 당신은 내 집이자 세상이야. 이 뜻은 내가 아무리 도망쳐도 당신 안에 있다는 거고. 무엇보다 이미 나는 뭐가 됐든 도망칠 수 없을 만큼 당신을 사랑하게 됐어. 그러니까, 당신은 그 약속 지켜. 내 불안함 속에서도 뒤엉켜 살자는 말, 못난 버릇까지도 품어주겠다는 말, 내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다가 다른 누군가에게 내 이름을 실수로 뱉고 싶다는 말, 그 정도로 사랑한다는 말. 전부 지켜. 나는 그럼 도망가지 않고 열심히 내 사랑 지킬게. 그렇게 우리, 우리라는 이름 아래 살자. 우리로서 살자. 우리로만 살자. 사랑해, 나의 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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