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와 나란히 누워 곤히 자는 낮잠만큼 과분한 행복이 또 있을까. 잠에서 깨자마자 누가 먼저 것 없이 안부를 물어대고, 부스스한 얼굴과 수수한 옷차림으로 함께 끼니를 해결하고, 그제 겪었던 우스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바람 얹힌 봄꽃인 듯 차르르 웃어대다, 다시금 졸린 눈을 하고서 정리되지 않은 이부자리 속으로 사이좋게 파고드는 일. 두어 시간 뒤에는 꼭 일어나자는 헤픈 약속. 이겨낼 수 없는 나른함을 반씩 나눠 가진 채 서서히 잠이 드는 순간. 나는 이러한 순간에 놓일 때마다 다신 없을 행복과 빈틈없는 쉼을 만끽한다. 유령은 유령인데 장밋빛 유령이라도 된 양, 붉고 향긋한 해방감을 경험한다. 사랑과 낮잠, 고작 이 두 가지의 조건이 나를 전혀 새로운 세계로 앞다 투어 인도하는 것이다.
사랑은 스스로를 가꿔가는 이들에게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소속감을 선사한다. 소속감은 곧 마음의 평화와 기대 쉴 수 있는 널찍한 터가 된다. 서로의 곁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요새가 된다. 또 얼마나 다치고 부서지고 거의 다 무너져버렸다 한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단 일순간이면 모든 생채기가 눈 깜짝할 새에 아물고야 만다.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배려하기도 벅찬 삶에, 나를 나보다도 아끼고 사랑하고 배려하는 사람의 보살핌 속에 산다는 것. 그 사람이 나를 지키기 위해 구축한 울타리 속에 산다는 것. 이는 결코 구속이 아니다. 자처한 파고듦이다. 수시로 나를 공격하려 드는 악랄한 외압을 피해 숨어든 여름의 무성한 수풀이다.
이렇듯 사랑은 마치 성나지 않은 자연처럼 내게 완전히 무해하다. 말라가는 나를 충분히 적시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관여도 않는다. 사랑은 늘 인간을 옳게 만들고, 지나치게 두껍던 마음의 껍질을 스스로 벗겨내게끔 하고, 신조차 어지럽게 할 만큼 강한 힘을 지녔고, 내세울 것 하나 없던 생에 가장 큰 자랑거리 하나를 손에 꼭 쥐여준다.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사랑은 완전해지고,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에 비례해 눈부시게 빛이 난다. 이보다 더한 힘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의 천부적인 힘은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내 모든 치부를 들키더라도 아무렴 좋을 사람이 있다. 그 곁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단잠을 청하고 싶다. 깊은 잠 속을 헤매는 동안에도 쭉 웃는 얼굴일 수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전부 내려놓고 벌거벗은 서로의 팔과 다리를 촘촘히 엮는 일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면, 하염없이 맑은 물속을 유영하는 기분 속에 매일을 머물 수 있다면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사랑은 이 모든 환상을 선명히도 가능케 한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이들 모두가 이와 같은 행운을 등에 업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수면 상태일 때 가장 여린 몸이 된다. 하물며 인간이라고 다를 것이 하나 있을까. 그러니 사랑이 대단한 것이다. 누군가의 곁에서 안심하며 잠들 수 있게 한다는 게. 더 나아가 안락함과 치유를 무한히 경험할 수 있게끔 한다는 게. 중천인 해가 뿜어대는 볕을 쬐며 서서히 감기는 눈. 가까운 곳에서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숨소리. 맞잡은 손. 꼭 내 것이 아닌 듯 흐물거리는 온몸. 참 행복하다는 생각. 영원한 행복이라는 듯. 사랑하는 이와 나란히 누워 곤히 자는 낮잠만큼 과분한 행복이 또 있나. 손닿으면 찢어질 듯 나약한 내가, 불안한 마음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 사랑 말고 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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