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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love

사랑이란 신

by 순애_ 2024. 7. 26.

내가 사랑하는 것, 이를테면 당신의 목소리, 손짓 하나하나가 환상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탐탁지 않아 하겠지만, 나는 불안하니까. 나는 당신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아니까. 시뮬레이션을 그날이 올 때까지 돌리는 거야. 아무 소용 없는걸 알면서도 계속 돌리면 나아질 거라는 멍청한 희망을 가지게 되니까.

당신이 나를 사랑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뭐였어? 나는 당신의 다정함이 참 좋았어. 짓밟아도 기꺼이 자라나는 괴물 같은 결핍들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나와는 달라서, 당신의 도처에 깔린 다정한 말투 말고, 그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문장들. 살가웠고, 우연 같지 않았어. 그래서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하나씩 문을 연 거야. 거짓말처럼 당신이 바라는 대로 된 거야.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 된 거야. 나의 모든 아픔과 슬픔과 불안을 꺼낼 줄 아는 사람. 당신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사람. 당신을 믿는 사람.

이제 우리, 행복해질 때가 되었으므로 서로를 만난 것이라 했지. 그 문장 하나하나에 들어간 자음과 모음이 모두 당신을 닮았어. 견고하고 부드럽지. 거칠지 않지만 각이 져 있고, 깊이가 있어. 그런 당신의 모습을 사랑하고, 반대편에서 사랑에 갈증을 느끼는 당신의 결핍도 사랑해. 우리가 비슷한 달에 태어난 것, 비슷한 손의 크기와 온도. 전부 우연일 테지만 인연으로 만드는 건 우리의 몫일 거야. 며칠 전 보여 준 당신의 스러지는 연약함,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눈을 감고 말하던 향기 같은 것들도 말이야.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었어. 도대체 왜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유를 알려 달라고 했어. 그 질문에 차마 답하지 못하고 식상한 말만 하던 그때의 나는, 사랑받는 법을 몰랐던 것 같아. 흔하디흔한 고백이 나날이 쌓여 갈 때마다 사랑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그 사람과 과거의 나는 모를 수밖에 없던 거야. 사랑이 신은 아니지만, 왜 사랑이 사람들에게 신이 되는지 알려 준 사람. 당신이 졸린 눈을 비비며 나지막이 나에게 하는 고백.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줘서 고마워.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싶다가도, 이 모든 건 절대 나 홀로 해낸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다시 한번 피어나고, 사랑, 그렇게나 없이 못사는 사랑을 하게 되고. 칼날 없는 목소리를 가질 수 있을 때 그 목소리가 당신을 향하도록 할 거야. 이 모든 것이 신을 위한 기적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기적이기를 바라. 이제 답하겠어. 사랑은 신이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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