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것, 이를테면 당신의 목소리, 손짓 하나하나가 환상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탐탁지 않아 하겠지만, 나는 불안하니까. 나는 당신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아니까. 시뮬레이션을 그날이 올 때까지 돌리는 거야. 아무 소용 없는걸 알면서도 계속 돌리면 나아질 거라는 멍청한 희망을 가지게 되니까.
당신이 나를 사랑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뭐였어? 나는 당신의 다정함이 참 좋았어. 짓밟아도 기꺼이 자라나는 괴물 같은 결핍들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나와는 달라서, 당신의 도처에 깔린 다정한 말투 말고, 그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문장들. 살가웠고, 우연 같지 않았어. 그래서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하나씩 문을 연 거야. 거짓말처럼 당신이 바라는 대로 된 거야.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 된 거야. 나의 모든 아픔과 슬픔과 불안을 꺼낼 줄 아는 사람. 당신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사람. 당신을 믿는 사람.
이제 우리, 행복해질 때가 되었으므로 서로를 만난 것이라 했지. 그 문장 하나하나에 들어간 자음과 모음이 모두 당신을 닮았어. 견고하고 부드럽지. 거칠지 않지만 각이 져 있고, 깊이가 있어. 그런 당신의 모습을 사랑하고, 반대편에서 사랑에 갈증을 느끼는 당신의 결핍도 사랑해. 우리가 비슷한 달에 태어난 것, 비슷한 손의 크기와 온도. 전부 우연일 테지만 인연으로 만드는 건 우리의 몫일 거야. 며칠 전 보여 준 당신의 스러지는 연약함,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눈을 감고 말하던 향기 같은 것들도 말이야.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었어. 도대체 왜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유를 알려 달라고 했어. 그 질문에 차마 답하지 못하고 식상한 말만 하던 그때의 나는, 사랑받는 법을 몰랐던 것 같아. 흔하디흔한 고백이 나날이 쌓여 갈 때마다 사랑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그 사람과 과거의 나는 모를 수밖에 없던 거야. 사랑이 신은 아니지만, 왜 사랑이 사람들에게 신이 되는지 알려 준 사람. 당신이 졸린 눈을 비비며 나지막이 나에게 하는 고백.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줘서 고마워.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싶다가도, 이 모든 건 절대 나 홀로 해낸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다시 한번 피어나고, 사랑, 그렇게나 없이 못사는 사랑을 하게 되고. 칼날 없는 목소리를 가질 수 있을 때 그 목소리가 당신을 향하도록 할 거야. 이 모든 것이 신을 위한 기적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기적이기를 바라. 이제 답하겠어. 사랑은 신이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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