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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스러운 애정

by 순애_ 2024. 4. 8.

짧은 탄식과 함께 너의 모든 행동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아아, 이제서야 모든 행동들이 이해가 되었다. 너의 행복을 위해 나의 불행이 필요했었구나. 나를 짓밟고 행복하려는 그 행복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픈 만큼만 딱 그만큼만 행복해라.

쏟아내지 못한 감정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게워낼 새도 없이 몰아치는 감정에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점점 희미해지는 눈앞에 잠시 휘청거렸다. 결국 삼키지 못한 감정을 켁켁거리며 속을 게워내는 내가 처량했다. 게워도 게워도 편해지지 않는 마음에 더는 게워내는 짓을 하지 않았고, 소화되지 못한 감정은 썩지도 섞이지도 못한채 남아있을 뿐이었다. 손에 세게 쥘수록 그 틈 사이로 새어나간다는 걸, 미련하게도 손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고 나서야 알았다. 이미 바닥에 흘려버린 것들을 더는 주워 담을수도, 담겨지지도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닿지 못한 애정이었는지 갖지 못한 집착이었는지. 이제는 의미마저 퇴색된지 오래였다. 궤도를 이탈한 폭주하는 열차는 파멸을 맞이했으며 표적 없이 날아가는 화살 또한 선량한 것을 다치게 했다. 갈 곳을 잃은 감정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나를 아프게 할 것이다. 답이 없는 것 또한 그에 대한 답이었다. 곪아버린 감정을 이제서야 드러내는 것만큼 치졸한 일이 또 없을 것이다. 차라리 치졸한 사람이 될 걸 그랬나 싶다가도 한 편으로는 내색하지 않은 것이 백 번 천 번 생각해도 잘 한 짓이라고 스스로 다독여본다.

그는 더 이상 애정을 갈구하는 것을 멈추라고 말했다. 그는 내게 할 도리는 다 하지 않았냐는 말을 덧붙이며 스스로 행복해지라는 말을 끝으로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한 말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바른 말들 뿐이라 따박따박 반박할 수 없었다. 내가 그에게서 받지 못한 것은 애정 단지 그 하나였을 뿐.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살아온 내게 마치 감정적 풍요는 사치라는 것처럼 들렸다. 어찌 보면 사치가 맞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잠시 뇌를 스쳐 지나갔다. 먼 나라의 굶어 죽는 아이들부터 가까이 있는 사회배려층 아이들까지. 그 아이들에게 나는 죽지 않고 먹고살 만한 수준이 아닌 재력가 수준으로 보일 테니까. 그러나 그 또한 소위 말하는 부자들. 정말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자들이 보았을 땐 가까스로 입에 풀칠이나 하는 정도일 테지만, 그는 누누이 나에게 그들과 비교하지 말라 일렀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그들의 삶이지만 결코 비교 대상은 아니란 말인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마치 애정은 사치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으나 그 역시도 나에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문맥상, 그리고 그의 평소 생각과 보이는 행동들 만으로 말의 뜻을 이해했을 뿐이다. 어찌 보면 참으로 간사한 행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정확한 의미 전달은 하지 않은 채 넘겨짚은 의미들로 그를 추궁했을 때 내가 언제 그랬냐며 발뺌하기 딱 좋은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그 스스로는 의도한 행동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한 발 빠져 있는 듯한 그의 태도는 어떠한 선택으로 어떠한 상황에 처해지든 모든 것은 순전히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나의 탓을 하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도움이라는 것을 주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것이 곧 그의 생존법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에게는 수없는 고심 끝에 내린 그 결론이 최선이었던 거다.

원망은 하지 않게 되었으나 쓸쓸한 마음은 쉬이 잠재우지 못했다. 그도 일찌감치 포기했으니 나에게도 일찌감치 포기하라는 것처럼 느껴져서. 애정이 사치는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애정을 줄 수 없다고 너무 단정 지어버린 것처럼 느껴져서. 받아보지 못해서 줄 수가 없다는 말을 이토록 잔인하고 슬프게 돌려 말했어야 했는지 원망스럽다가도, 그 말을 아무 감정 없이 들리게 말하려 노력했을 그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게 사무쳤을지 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누누이 입버릇처럼 나에게도 나를 온전히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그의 속내를 내비쳤다. 그를 대신해 나에게 사치스러운 애정을 선사할 누군가가 곁에 있기를 항상 희망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나를 향한 애정이었음을 너무 늦게 알아차린 건 아니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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