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스스로를 내리깍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다. 나처럼 한심한 사람들이 동시대에 여럿 살아 숨쉬고 있으려나. 일찍이 눈을 떠도 두세 시간이고 잠잠히 침대에서 산송장같이 자빠져 있는 사람이 있으려나. 휴대폰을 보다가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또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으려나. 유년 시절 당연하다는 듯 배웠던 양치와 세수, 샤워 그리고 아침밥, 방 청소같은 습관들을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불규칙하게 할 수가 있다니.
연명하듯이 겨우겨우 살아내는 것도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다니. 맘먹은 행동 하나 옮기는 데에만 몇십 분 소요돼서 이쯤 되면 그냥 잠자코 살다 가는 게 최선일 거란 생각까지 들어. 열여덟 때엔 그저 넓은 집 거실 안에 작디작은 내 어둠의 방 하나쯤 키우는 느낌이었는데, 그에 비하면 지금은 칙칙한 터널 그 안 어디쯤인지도 모르는 불 꺼진 통로에 갇힌 것 같다. 분명 열려있을 텐데, 입구와 출구가 있을 텐데 하면서 걷다 보니 이게 진정 걷고 있는 건지 가만히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발끝을 뗄 때마다 족족 사라지곤 하는 발자국들도 이젠 죄다 내 것이 아닌 듯하다.
어디로 가야 해요.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해요. 조언을 구하면 구할수록 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직감이 기정사실화 되는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다들 말은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정작 나만 이렇게 한심한 꼴이란 걸 인정하게 될까 봐서. 괜찮아, 닥쳐오는 불안만 해결하고 또 당장 오늘의 무력함만 회복하면 되잖아. 괜찮아. 괜찮아,라는 말은 진짜 위험한 거다. 너 그거 아니. 얘는 고작 세 글자 만으로 모든 걸 무마시켜 버리거든. 그렇지만 이쪽이 훨씬 평온할 지도, 행복할 지도. 단순함과 무식함은 나의 또 다른 한심한 무기가 된다.
나는 안온하고 바보 같은 삶을 고를게. 여느 당신들처럼 열심히 발악하며 타오르지 않을래.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가열되어 녹다가 굳다가를 반복하다가 생명을 잃을래. 무언가를 자각하는 순간 내 모든 의식을 닫을게. 기억을 지울래. 금방 바뀌어버리는 진열장의 소모품처럼, 그렇게 살래.
diary/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