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한편엔 사용되지 않는 의자와 테이블이 짐짝처럼 쌓여 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을 지키기 위해 테이블 간 간격을 벌리려다보니, 자리에서 밀려난 테이블과 의자가 저렇게나 많았다. 쌓여 있는 의자와 내가 앉은 의자가 얼핏 공평한 시간 속에서 다른 속도로 낡아가고 있다. 나는 내 위치를 가늠한다. 삶의 변두리 어디쯤 밀려나 있는지. 간격이 벌어진 분자가 기화하듯, 변두리로 밀려나야만 하는 삶도 공허하긴 마찬가지였다. 되는대로 대충 얽어 만든 주체 없는 인생. 내 은하의 중심에 놓인 것들을 생각한다.
아주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인력으로 소멸하지 않을 정도로만 겨우 나를 지탱하는 것들. 비가 오면 자꾸만 무책임하게 증발하고 싶다. 천 광년의 공동. 다시 말해 내가 사는 별은 천 광년의 공허, 그 중심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빛의 속도로 천 년을 달려야 도달할 수 있다는 공허의 끝. 나는 이 공허가 끝나는 순간을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런 걸 생각할 때면, 사실은 생의 본질이란 공허에 있는 것이다, 그런 확신에 도달하기도 했다.
저 단어를 알지 않았더라면 나는 조금 덜 공허한 인간으로 자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하지만, 후회를 함의하는 가정이란 언제나 뒤늦은 것이다. 천 광년의 공동은 그 존재를 알게 된 인간에게 유산처럼 공허를 떠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공허 속에서도 태양은 뜨겁고, 지구는 공전하고, 달은 표정을 바꾸면서 만조와 간조를 만든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저 존재할 따름이다.
삶에 별다른 목적 없이, 그저 사는 것 자체가 의미이자 목적이라던 사람을 생각한다. 무의미의 의미. 이제 그 애는 내게 사랑을 말하고, 사랑의 언어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내게 유의미한 것이 되었다. 그 애의 사랑은 생에 점성이 돌게 해서 내가 돌연 증발하지 못하게 단단히 붙든다. 분자 간의 인력이 강해지고, 그만큼 밀도가 높아지는 걸 매일 체감한다. 공허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서로의 생에 유의미한 무언가가 되려 하고 있다.
diary/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