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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life

괜찮아질 나를 안다

by 순애_ 2024. 4. 14.

사실 불안했다. 그것도 엄정 많이. 요즘의 날들이 자주 그런 모양이었다. 나사가 빠지고 마음이 내려앉고 기분이 쇠약해졌던, 마치 일그러진 빵 같았던 하루. 잘하고 있지만 잘하는지 몰랐고, 나아가고 있었지만 정작 나로 사는 나는 그걸 느끼지 못했다. 마냥 아무것도 없는 들판을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걸어가는 것만 같던 날들의 연속.

그 와중에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게 내세울 만한 무엇이 없어도 산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 되면 좋겠다. 불안 따위가 감히 내 삶에 끼어들지 못하게 해야지.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하고 종종 머리를 말리며 멍을 때려야겠다. 생각을 비우고 몸은 가볍게. 비타민을 거르지 않으며 잠은 12시 전. 매일 다짐했다. 오늘 못하면 내일은 꼭 하자고. 대충이라도 좋으니 일단 발을 들여보자고. 나름대로 성실히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잘 가던 하루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마음에 작은 파동이 생겨버렸다. 안정된 상태가 아니었다. 생각이 너무 많았고, 또 잘하고 싶었고, 지금 하는 일이 잘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날이 갈수록 거대해졌다. 이 마음은 나를 천천히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했다.

눈을 감으면 어두운 미래가 어느 틈에 내 삶이 돼 있을 것 같아서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을 먼 미래를 끌어다 현재에 불행을 심었다. 참 부질없는 짓이었는데. 불안이 삶에 들어오게 되면 사람은 연약해지고 만다는 걸 지나고나서야 깨닫는다. 실은 언제든 잘 될 수 있고 어느 날은 망할 수도 있는 거였는데. 그걸 자꾸 잊어만 갔던 거다.

연약한 나도 나다. 슬퍼서 울고 있는 나도, 어딘가로 동동 굴러떨어져 있는 나도, 움직이지 못해 정지돼 있는 나도. 나는 나라고 믿는다. 아직 그런 나를 사랑하지 못하지만 미워하진 말자고 생각했다. 사랑도 못하는데 미워하기까지 하면 내가 너무 불쌍하니까. 그래서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기로 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말자고. 불안에 사로 잡혀 잊고 있던 내 전부를 편히 놓아주자고.

나쁜 날의 다음엔 좋은 날이 오고 비 온 뒤 땅은 굳고 겨울 다음은 봄이 온다. 소나기는 언젠가 멎고 나를 잔뜩 뒤덮은 함박눈은 언젠가 녹눈다. 어둠 뒤에는 빛이 있고 오늘의 내가 있다는 건 결국 불안과 싸워 이겼다는 것. 어딘가 고장난 사람처럼 굴어도 된다. 불안해도 나아갈 수 있다. 잠을 자지 못하는 날엔 불을 켜도 된다. 생각보다 간단할 일일지라도 이게 전부다.

얼마든지 나의 길을 향해 가는 길을 잊어도 된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된다. 내가 가만히 멈춰 있는 날이 많다고 해도 언젠간 일어나게 될 거라는 말을 건넬 거다. 아무것도 못해도 된다. 결국 괜찮아질 나를 안다.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결국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내 삶에 최선이었고, 내가 지킨 나는 무사히 오늘에 도착했다고 믿을거다. 아무 걱정 말고 마음을 다독여보자. 결국 나는 잘될 거다. 그래야만 한다. 그러지 않게 돼도 언젠간 반드시 그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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