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려면 기억력이 나빠야 하고, 눈치가 없어야 한다. 내가 실패했던 모든 경험들을 빨리 흘려보내야 하고, 상대가 보내는 쎄한 기운에 멍청한 웃음으로 답하는 단순한 인간이 행복하기 쉽다. 저급해 보이는 싸구려 행복 같아도 가장 어려운 게 행복이다. 내가 바란 건 얼마나 고급진 행복이었는지, 얼마나 오래갈 행복이었는지.
그놈의 촉이 자꾸 정곡을 찔러와 얼른 눈을 감았다. 보이는 모든 것들을 관찰하고 기억하고, 연관 짓는 버릇이 들었다. 걱정하는 일들의 대부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위안 삼으려 했는데, 내가 그 대부분에 속하지 않는 거라면? 천부라고 단정 지울 수도 없으면서 왜 그런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뱉냐는 부정적인 생각부터 들었다.
사실 나도 모르는 게 아니다. 수없이 고민해도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많지만, 걱정의 양을 늘려서 예상 적중 횟수를 늘리는 것으로 안심하는 것뿐이다. 열 번 중에 한 번꼴로 나의 예상이 들어맞다면, 열 번 적중을 위해 난 백 번의 고민을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거봐, 역시나 내가 생각한 대로잖아'라는 안도감보다 그 수많은 경우의 수를 머리에서 그려보는 동안 잃은 수많은 나의 순간들을 간과하는 거다.
나는 어느샌가 생겨버린 수많은 물음표들에 쫓기듯 살아온 것 같다. 후회가 가득한 한탄은 어느샌가 의미가 없어졌고, 수많은 걱정과 의심이 결과를 바꾸지도 못했다. 나의 다가올 운명보다 나의 현재에 미안해지지 않게 그 순간을 살아가는 게 가장 멋진 일인 것 같다. 뭐가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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