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들추고 곱씹어 본다. 과거에 사로잡혀 있으면 어때. 과거에 발목 잡혀 있으면 좀 어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 나는 어떡하라고. 하아, 깊은 한숨 소리에 등이 쪼그라든다. 서늘한 시선에 흘러나오던 눈물이 도로 들어간다. 감정에 호소하는 나를 이해 못하겠다는 듯이 눈을 감아버린다. 됐다, 그만 얘기하자. 시작조차 하지 않았는데 멋대로 끝을 내버린다. 차게 식은 손가락 끝을 감싸 쥔다. 덜덜 떨려오는 몸을 더 작게 웅크리고 무릎을 끌어안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꼬물거리는 발가락 끝을 바라보다 둥글게 말아 쥐었다. 들려오는 한숨 소리가 마음에 쌓여 무거워진다. 등을 크게 부풀리며 숨을 내뱉어 보아도 마음의 돌덩이들은 해소되지 않는다. 주먹을 쥐고 가슴을 턱턱 두드려도 보지만 여전히 답답하다. 콩벌레처럼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어도 나아지는 건 없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특별한 범주 안에 잠시 어우러졌다고 마치 그 구성원의 일부였던 것 마냥 즐겨버렸다. 소외된 소속감, 거지 같은 고양감. 머리가 차게 식고 나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어지간히 외로웠구나. 외로운 줄도 몰랐다는 게 제일 수치스럽다. 청승맞은 밤이었을 거다. 불현히 문득 스친 쓸데없는 잡생각은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혹시나 버려질까봐 두려운 거였나 보다. 겉으로 보여지기에는 두터운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그 집단은 사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었다. 뚝뚝 끊어지는 문장들은 마치 뚝뚝 끊겨나가는 관계 같았다.
자기반성 따위는 하나도 하지 않는 모습에 치를 떨며 기필코 떠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더 단단히 새겨놓는다. 숨 막히는 고요보단 어색한 소음이 더 낫겠다는 생각 또한 함께 하며. 애초에 보금자리 같은 것이 내게 있었던가.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어쩔 수 없이 생명을 부여받은 내게 보금자리는 사치가 아니었을까. 창조주의 부재는 생각보다 엄청난 결점이었다. 습성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시무시한 것이었고 나라는 존재는 어쩌면 고쳐 쓸 수 있는 것이 아닌 불량품인 줄 모르고 세상에 나와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사용설명서를 뒤적여 보아도 부품 하나가 부족해 대충 끼워 맞춰 어찌어찌 굴러가는 RC카처럼. 끝끝내 레고 한 조각을 찾지 못하고 유리장 어디 한편에 전시될 대충 만든 성처럼. 대충 보아야 예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문제없는, 그렇지만 결국 불량품이라는 오점은 지울 수 없는. 그런 결점은 오점이 되어버릴 것이다. 배우지 못한 것은 끝끝내 배울 의지가 없는 자에겐 소용이 없을 것이고, 백날 귀에 때려 박는 소리들은 그대로 흘러나와 메아리가 되었다. 결점들이 모여 오점을 만드는 순간 오점은 과연 백 점이 될 수 있을까. 백 점들도 실점을 하는데 오점이 실점을 하면 더 큰 결점이 될 텐데. 과연. 그렇다고 결점끼리 모여사는 것이 과연 해답일까. 인자한 백 점들은 또 몇이나 될까. 결점은 영원히 결점일 것이고 오점은 백날 노력해 봐야 고작 결점 정도로 밖엔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자리를 박차고 나갈 용기 따위는 없다. 차라리 오점보다는 결점이 더 낫지 않겠냐는 결론 따위를 내린다. 아직은 여기를 벗어날 자신이 없 다. 더 나은 삶이 아닌 것을 탓하기 바쁘다. 나아갈 용기는 없으면서 신랄하게 비판할 용기만 그득하다. 오늘도 이 숨 막히는 고요보다는 차라리 어색한 소음이 더 낫겠다는 생각만 한다.
diary/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