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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2024

20240308

by 순애_ 2024. 4. 14.

계획에 없던 낮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잊어버린 것이 수두룩하다. 사야 할 식재료들, 읽어야 할 책들, 만나야 할 사람들, 엄마에게 걸려던 전화. 부랴부랴 몸을 일으키고 밖으로 나왔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 거리의 분주한 사람들을 보니 잊었던 사람들이 수북하다. 연락 한 통 안 하게 된 친했던 친구, 한동안 참 많이 사랑했던 그 사람, 안부들로 뒤덮은 채로 보지 않았던 지인들, 한 번쯤은 만나고 싶던 누군가. 삶에 치여 누군가를 잊어간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한숨이 나왔다. 누군가는 나를 잊어가겠구나. 아니, 어떤 이는 벌써 나를 잊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씁쓸해졌다. 누군가를 잊고, 누군가에게 잊힌다는 것. 오늘은 다른 날보다 퍽 외로운 밤이겠다.

보고 싶은 이름 하나둘씩 적어보면 꼭 한편엔 그의 이름이 있다. 왜 똑같은 펜 똑같은 크기로 적힌 글씨 중에 유독 그의 이름 석 자만 나를 울릴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그건 나를 빼고 하는 말일까. 그가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꼭 내 마음은 그의 그림자 같지. 한없이 다정하기만 하던 그의 이름 석 자는 오늘따라 왜 이리 딱딱할까. 각진 글씨들을 둥글게 매만지고 싶다. 여전한 내 사랑들로 그 세글자 다정하게 불러 보면 그도 갔던 길따라 다시 내게 올까. 그는 자주 길을 잃게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내 손을 잡아 다시 네게로 이끌었지. 이제는 어두운 밤을 혼자 걷게 하고서는 내 이름 석 자 불러주지도 않는구나. 나는 또 그 때문에 갈 곳을 잃어 새벽마다 나 좀 잡아달라 네게 아우성치는데. 존재 자체만으로도 내게 습관 같던 그는 나를 지나쳐간 수많은 사람들처럼 금세 나를 떠났다.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를 우리의 추억에 허우적대며 또 습관처럼 그를 찾는다.

가끔 이해라는 것은 포기라는 의미를 병행하기도 한다. 나는 그보다 사랑을 더 많이 해보지는 않았지만 우습게도 이에 대해서는 그보다 더 알고 있어서. 나는 그가 권하는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들이 그를 포기하라는 말로 달리 들리곤 했다. 그때 나는 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랑한다면 그러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매번 목구멍까지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는 이해를 바랐고, 반복했고, 시간이 지나서는 강요했고, 또 방치했다. 나는 이해하려 노력했고, 이해하지 않으면 우린 싸웠고, 결국 지는 건 나였기에 이해를 할 수밖에 없었고, 전부 이해했다. 이해를 하면 할수록 나는 그를 점점 놓아갔다. 함께 자리하던 곳에서 한 발짝, 두 발짝씩 멀어졌다. 처음부터 그는 내게 이런 것을 바랐을까. 아닌 줄 알면서도 맞는 것 같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쉰다. 이해가 잦으면 포기가 된다. 그는 이해해주길 바랐지만, 내게 이해는 포기 그 자체였을 뿐. 이해하지 못했던 건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저 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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