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트려고 할 즈음에 스르륵 눈을 떠서 잠들어있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다. 쌕쌕 숨 쉬는 소리가 적막을 깨면 그제야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손가락 끝으로 살며시 그의 눈과 코, 그리고 입을 따라 그리며 사랑한다고 작게 읊조린다. 언제는 그의 품에 안겨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그의 손바닥에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다. 키득거리는 소리가 공간을 메꾸었고 그는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정하게 쿵쿵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잠이 쏟아졌다. 잠들지 않으려 눈에 힘을 주고 미간을 찌푸리자 소리 없이 웃으며 찌푸려진 미간을 슥슥 문댔다. 따듯한 온기에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따듯한 그 사람이 너무 좋다. 차디찬 내 몸을 만질 때와 다르게 그에게선 사람 냄새가 났다. 킁킁거리며 당신 품에 파고들수록 그는 나를 세게 끌어안아주었다.
온갖 마음을 건네어 지루할 틈 없이 낭만을 조각조각 내어주는 사람. 멀뚱멀뚱 서 있을 필요 없이 사랑으로 붐비게 해주는 사람. 쉴 틈 없이 달리는 차 안에서 창문을 내리고 온몸을 맡기듯이 그냥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날마다 소화시키지 못해 뒤척이게 만드는 비수같이 꽂힌 말들을 부드럽게 내려가게 해주고, 식은땀으로 얼룩져 부대끼는 하루를 어쩌면 썩 괜찮은 하루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줬다. 그는 내게 언제나 그런 사람. 그라면 거리낌 없이 촌스럽고 불편한 치부를 드러낼 수도 있다. 나의 초여름 몸살 같은 비밀들도 속삭여줄 수 있다. 그를 만난 이 후 밤바다 부풀리던 울음이 멎어 들었고, 창틀에 걸터앉아 생사를 고민하던 날들이 자취를 감추었지. 우리도 여름꽃을 피워 볼래? 그는 마치 축축한 흙 속에 들어가 씨앗이 정착하기만을 바랐던 사람. 나는 정착할 흙을 찾던 사람.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필연적으로 이끌렸던 거다. 아무래도 나는 필연적으로 그를 위해 꽃을 피워야겠다.
diary/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