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완전히 망가지게 두지 않는 사람 하나 덕에 살아낸다. 발을 헛디뎌 하염없이 낙하하는 나를 단번에 건져 올리는 사람. 쏟아내지 못해 사방으로 부풀어 오른 내 이야기를 애써 들어주는 사람. 돈 십 원 한 푼 받지 않고도 내 푸념을 귀담는 사람. 내가 줄 수 있는 건 고작 가난한 애 정뿐이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지 않을 행복과 과장 조금 보태어 새 것의 삶을 얻어낸다. 그러는 나는 괜한 농담 같은 말씩이나 툭툭 건네며, 벅차오른 감사를 가벼운 척 깊숙이 전한다.
삶이란 본디 꽤 쓸쓸한 것이기에 그 고독의 영향권 속에 정통으로 속해버린 사람은 필사적으로 애정할 존재를 만들며 살아간다.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적 수단으로써. 무언가를 마음 다해 사랑하지 않고서는 쉽게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기 일쑤이기에. 모든 감정에는 총량이 있다지만, 쓸쓸함은 일평생 살아가면서 견뎌내야만 하는 필연에 가깝다. 때로는 휩싸인 쓸쓸함을 도저히 이겨내지 못할 것만 같아 더욱이 악랄한 고통을 고의로 찾아다니기도 한다. 주량을 훌쩍 뛰어넘게끔 술을 진탕 마셔대고, 평소보다 많은 양의 담배를 줄줄이 피워대고, 우울한 영화와 음악을 보고 들으며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빠트린다. 옳지 않더라도 밀려오는 쓸쓸함으로부터 멀리 달아난다. 그러는 동안 신체적으로도, 마음 내적으로도 서서히 병들어가고 망가져 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끝끝내 완전히 망가지지 못한다. 내가 잘게 부서지는 골을 두고 보지 못하는 이들, 그들은 나의 지나친 나약함을 용케도 제때 포착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 의해 구원에 가까운 도움을 받는다. 혼자서도 충분히 헤쳐갈 수 있음을 장담했던 지난날을 아무도 몰래 지워낸 다. 자주 은혜를 입고, 가끔 베풀며 살아간다. 생존의 수단으로 쭈뼛쭈뼛 건네기 시작했던 애정이, 시간 지나며 점차 행복의 진원지로 자리한다. 고 작 삶의 편린에 불과했던 관계들이, 내가 가진 전부의 전부가 되어간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퍽 즐겁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이 하나도 자존심 상하지 않는다. 엉뚱하고 유치하더라도 그들은 내 삶을 손쉽게 견인할 힘을 가졌으니. 쓸쓸함은 기어코 나를 망가트리려 들겠지만, 나는 그 꼴을 두고 보지 못하는 이들 덕에 또 오늘을 살아낸다. 열심히 살아, 꾸역꾸역 번창해서 네가 나를 먹여 살려, 많이 벌고 많이 모아서 그중 절반은 나 줘, 하는 우스갯소리로 그들에 대한 감사를 돌려 전하면서. 한 발 한 발 어렵게 가도 괜찮다고, 누군가의 눈에는 고작 몇 번의 꿈틀거 림으로 보인대도 괜찮다고 믿고 싶다. 그저 내가 애정하고, 또 나를 애정하는 이들의 시선 속에서만 살아있으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꼭 이 넓은 세상 에 전부 발 디디며 살 필요는 없다고. 당장에 현관문을 열고 몇 걸음 걸어 나가 숨을 크게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이자 기쁨인 거라고.
diary/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