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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2023

20230301

by 순애_ 2024. 4. 8.

너만 보면 자꾸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착하지 못한 내가, 착하게 살면 상처를 기본적으로 받고 살아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무수히 젓던 내가, 네 앞에만 서면 이기적이게 사는 법을 잊는다. 특히나 신은 나를 매번 무너뜨렸기에 더는 진절머리가 나서 살 수 없다며 얼마 전까지도 열심히 숨기에 바빴던 내가,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몰라 우울 속에 투영하던 내가 왜 자꾸 너를 믿고 싶을까. 기어코 좋은 사람이 되어 너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내 방을 가득 채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분명 신과 같은 것들은 멀리하겠다며 수십 번도 넘게 다짐했던 사람이다. 다시는 내 전부를 걸지 않겠노라. 죽어도 무언가를 나의 계절의 대상으로 두지 않겠노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연관 짓지 않겠노라. 나는 분명 매일 밤 그런 다짐들을 베개 아래 두고 잠에 들던 사람이었다는 거다. 그러나 이 모든 건 우습게도 점점 무의미한 일이 되고 있다. 번지는 마음이 두렵다. 멋대로 색이 칠해지는 내 일상들이 두렵다. 그럼에도 오늘 네 하루가 또 궁금한 걸 보니, 이미 늦은 게 틀림없다. 차곡차곡 겨우 쌓여가는 하루에 너를 끼얹고 싶다.

다시는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사랑에 또다시 빠져버렸을 때, 기어코 내 하루를 네가 가져버렸을 때, 나는 바로 알았다. 내가 여기서 무슨 수를 써도 도망치지 못하겠구나. 결국 운명이니 뭐니 해대면서 사랑하겠구나. 계속해서 영원을 증명하려 애쓰겠구나. 나를 제일 많이 망치는, 살게 하다가도 끝내 나를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내 인생을 있는 힘껏 뒤흔들어놓는 것. 나는 그게 늘 사랑이었기에 더 두려웠다. 근데, 그럴 때마다 자꾸 너는 내게 사랑한다고 했다. 이런 내 속을 들여다봤다는 듯이. 마치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감히 나와의 미래를 약속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서 죽기 전 마지막까지 볼 얼굴은 나로 정해져 있다는 듯이 구는 사람.

그런 너를 보고 있으면 대체 어떻게 이런 나를 사랑할까 싶었다. 날씨가 좋으면 좋다는 핑계로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 날씨가 흐리면 온통 우울한 것들로 가득해져서 유독 나를 더 찾는 사람. 내가 밥을 거르기라도 하면 종일 속상해하는 사람. 내 작은 기침 소리에도 큰일이 난 것처럼 구는 사람. 내 웃음소리에 덩달아 웃는 사람. 내게 좋은 일이 생기면 나보다 더 행복해 하고, 나쁜 일이 생겼을 때는 전부 다 대신 짊어주려하는 사람. 지난 사랑은 그저 우리가 사랑하기 위한 연습이었을 뿐이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 하루의 시작과 끝을 꼭 나로 하는 사람. 나의 울음과 불안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사람. 그게 너였다.

언젠가 네가 그랬지. 울음을 참아낼 때마다 잔뜩 터져버리는 아랫입술은 그만 놓아주고, 대신 자기한테 전부 쏟아내라고. 그 말을 들은 순간 지레 겁부터 먹었던 무수한 날은 행적을 감췄고, 너덕분에 나는 더 이상 가난한 마음이 아니었다. 예고없이 찾아오는 결핍과 멋대로 뒤엉켜버리는 감정들 역시 이제 내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너와 수없이 바뀌는 계절을 함께 걷기로 약속하길 잘한 것 같지. 내가 이렇게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할 수 있게 된 거 보면 말이다.

나는 그런 너를 이제 너무나도 당연하게 사랑한다. 넘치도록 사랑한다. 혹시 알고 있어? 이제 와 아무런 소용없다는 거. 나는 분명 너를 좋아하고, 이 감정이 두려워도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한 번 시작된 마음을 멋대로 멈출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모른 척 지나가는 방법 같은 건 없으니까. 그래서 요즘, 나도 모르게 너의 꿈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해. 그리고 네가 가는 길을 꼭 같이 걸어야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 나는 네가 행복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렸을 때 내 이름이 당연하게 따라붙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서서히 서로에게 물들다가 너의 자랑, 너의 집, 너의 전부가 되고 싶어. 네가 내게 뛰어든다면 기꺼이 바다가 되어줄 수 있을 만큼 너를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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