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면 꿈속에서 그 사람을 보았다. 이제 이 생에서 볼 수 없는, 나의 흑백이 되어 버린 슬픈 그림자. 다시 눈을 뜨면 현실로 돌아왔으나 이곳은 주야를 가리지 않는 고독한 지옥이었다. 내 독방에선 퀘퀘한 냄새가 났고 인간들에게선 밤마다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죄다 지겨울 만큼 모멸스러웠다.
의지할 곳 없는 무심한 세상에서 사랑을 기대하고 사랑을 희망하고 사랑을 용서했다는 이유로 순진무구하다는 소릴 들었고, 나는 단지 나라는 이유로 죄인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낭만, 글자, 청춘. 그러나 이것은 타인에게 득이 되지 않았으므로 내가 잠시라도 입술에 올릴 때마다 역겹다는 시선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은 마치 나를 이 지구에 잔존해선 안 되는 오물처럼 느끼게끔 했다.
내가 사랑했던 정인도 다정했던 친구도 그 이면에는 흉한 몰골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우친 슬픈 청춘이었다. 한가운데의 여름마냥 철없기만 한 나에게 숯내 나듯 거무스름했던 눈동자에 담긴 과분한 지구에 선 채 맞이한 여름. 나는 그 여름에 증오를 품지 않으려 애쓰는 내가 슬프기만 하고 불행하기만 했다.
그래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나를 챙기기도 벅차고 힘들었다. 한때 이젠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법을 조금은 익혔다고 말한 내가 떠오른다. 그 이후로 나는 추락하고, 또 추락하고, 또 추락하였다. 그날이 행복의 한계점이었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툭 치면 넘어지는 날들의 연속이다. 괜찮냐는 무심한 말에 과분한 의미를 담아 엉엉 울어 버리는 연약한 나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제법 나를 힘들게 했고, 그것도 모자라 안 좋은 일들도 겹쳐 내게 돌아왔다.
사랑했던 정인과 다정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찰나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이유로 질타를 받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나는 이런 게 힘들다고 할 때마다, 이런 게 고민이라고 할 때마다 내가 너무 순수하고 정이 많은 탓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말이 마치 나에겐 벌처럼 느껴졌다.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누군가를 품고 보듬으려 한 것도 죄일까. 누구 눈에는 그저 오지랖이었을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의 신념이 흔들렸다.
어떻게든 사랑하겠다는 신께 맹세한 약속이 눈물로 흐려진다. 찢어질 듯 옅어진다. 어떤 이에게 이번 여름은 사랑의 계절일 것이고, 어떤 이에게 이번 여름은 이별의 계절일 것이다. 여름의 무더위 부근에 서 있는 나에게 여름은 무엇이냐 묻는다면, 이번에도 어김없이 지옥이라 답하겠다. 나는 작년보다 더 큰 아픔을 겪고 있다. 작년보다 더 외롭게 보내고 있다. 의지할 수 있는 곳도, 사람도 줄어든 채로 말이다. 이 글을 마치는 때에 해가 저물고 있다. 나는 조심스레 눈을 감았다 뜬다. 이제는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겠다.
di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