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재는 종종 내가 죽는 꿈을 꾼다고 했다. 나의 장례식에 몇 번이나 왔다고. 그런 날은 꼭 깨어나서 울었다고 했다. 다시는 못보게 되었다는 서러움이 복받쳐서 "나는 이제 어떻게 사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고도 했다. 그런 희재를 보면서 나는. 어차피 헤어졌으니 못보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고 물으려다가, 어쨌든 마주 앉은 상황 탓에 그러지 못했다.
우린 어쩌다가 다시 마주앉게 되었을까. 나는 왜 새벽에 걸려온 희재의 전화를 기여코 받고 말았을까. 의문은 해결되지 않고서 젯바퀴처럼 나는 왜. 나는 왜. 소리를 내며 의미없이 돌았다. 헛도는 쳇바퀴가 달구어 놓은 정수리가 미끈하게 뜨겁다. 별 일 없으면 됐다고 말하는 희재에게 나는 고개만 끄덕여 인사를 대신 했다. 헤어지던 날 안녕은 충분히 말했으니 우리 사이에 더 이상의 안녕은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나의 눈을 가만히 보다가 곧, "앞으로도 별일 없이 살자, 우리." 했다. 다시 이별이었다. 가만히 희재가 말하는 '별일'의 기준을 생각하는 동안 그는 복잡한 눈으로 떠났다.
매일 아침 현관문 너머로 봤을 멀어지는 어깨를 매일과 다른 심정으로 본다. 돌아서는 희재의 꿈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죽고 싶었다. 아니 몇 번이라도 죽고 또 다시 죽어서 그의 가슴에 결석 같은 단단한 비석이 되고 싶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 언저리가 묵직하도록, 앞으로 살아갈 몇 십년의 시간동안 비바람을 맞아도 굳건할 비석이 되고 싶었다는 말이다.
테이블 위에는 희재의 연필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잃어버린 건지 남겨두고 간 건지 알 방법은 더이상 없다. 연필을 자주 쓰는 사람은 연필을 잘 깎을 거라는 오해를 오래 하며 살았다. 희재가 깎아놓은 가지런하지 못한 연필이 시커먼 흑심을 송곳니만큼 날카롭게 드러낸다. 날것의 욕망. 그것은 기어이 우리의 이별마저 기록하고 말겠다는 욕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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