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사랑을 젠가에 비유한 대화를 글에 적은 기억이 있다. 오래된 기억을 복기해 재연하자면 아마, "있잖아. 아까 젠가할 때 이게 꼭 우리 같다고 생각했어. 딱딱하고 가지런한 관계에서 조금씩 무용하고, 위태롭고, 아름다운 것으로 변해가는 게."였을 것이다.
무용하고 위태롭고 아름다운 것. 내가 지금껏 해온 사랑을 한 문장으로 함축하자면 그렇게 적을 수 있을 거였다. 그보다 나은 표현은 기필코 없다. 거의 쏟아지는 동시에 끝이 났으므로 명백했다. 그런 의미에서 젠가에 비유한 사랑은 반만 맞았다. 내 사랑은 한 번도 정갈하고 가지런히 쌓인 상태에서 시작한 적이 없다. 내게 사랑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것, 큰 소리로 요란하게 시절을 물들이는 것. 그러니까, 굳이 고쳐 표기하자면, 젠가보단 바구니에 담긴 블록을 땅에다가 힘껏 쏟아붓는 형태에 더 가까웠다. 땅에 쏟아져 메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블록끼리 부딪쳐서 기꺼이 부서지기도 하고, 금이 가기도 하고, 이가 나가기도 했다. 위로 쌓이는 것은 거의 없이, 겨우 포개지는 게 전부인 무용한, 혼란 속의 아름다움. 내 사랑은 불안정함 속에서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야만 한다고 여겼으니까. 그랬는데,
요즘의 나는 다르다. 실수로 떨어뜨려 이가 나간 블록 하나도 안타깝게 여기면서 신중하게 군다. 원래 놓여야 할 자리에 순순히 놓이는 기분으로, 나는 매일 매 순간을 애인과 함께 쌓아가고 있다. 내려놓을 때마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하나씩 찾아가는 기분을 느낀다. 5층을 쌓으면서 6층의 모습을 어렴풋이 그려볼 수 있고, 6층을 쌓으면서는 다시 7층에서 내다 볼 풍경을 기대할 수 있다. 착실하게 쌓이는 마음에 순응한다. 애인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일은 경이롭다. 몰두해서 하다 보면, 끝내 완성할 수도 있겠단 기대를 남몰래 품게 된다. 이제 내게 사랑의 정의는. 무용하고 위태롭고 아름다운 것에서, '생의 한가운데에 놓일 탑을 함께 쌓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동등하고 나란한 관계란 얼마나 이상적인가. 나는 애인으로부터 이상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더없이 이상적이라고 여긴다. 내게 폐허를 엿봤다던 애인은 이제, 내 생에 불쑥 걸어 들어와 나를 싹 틔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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