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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life

방황하는 삶과 꿈

by 순애_ 2024. 8. 13.

로망 가득한 꿈속에서 잠겨 죽는 중. 행복을 유영하는 꿈이었다. 꿈은 나의 낭만이었지만, 허상을 넘어서 사치가 되었다. 예쁜 바다 밑에서 꼭 소용돌이가 치고 거센 파도가 덮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발악할 힘도 없이 묻힌다. 누가 날 사랑하지? 로망 다 버리고 현실을 살 수는 있고? 상처받지 않을 수는 있고? 상처 주지 않을 수는 있고? 질리는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 간절해서 그냥 질리는 사람이 되기를 선택했고, 이미 돌아가기엔 늦었다.

'역시나'라는 실망에 질려서 큰 기대를 꾹꾹 눌러 숨겨버렸고, 약하디 약해져서 무너졌다. 나를 깊은 바다에 빠뜨린 탓에, 절벽 끝에서 스스로 떨어진 탓에 잠깐 반짝했다가, 금세 사라지고 만다. 나의 젊음도 빛바래져 가는 중. 젊음이 축복이라고 했던가. 왜 나는 그런 젊음을 쓰레기통에 박아버렸나. 스스로를 향한 애증은 어중간한 배려라 혼란만 가져온다. 이 모든 애증을 난 모아서 애정결핍이라고 함부로 정의했다.

절절한 눈과 애틋한 그 목소리는 항상 그리움이었다. 떠나가는 뒷모습에 그제서야 못다한 말을 뱉어보는 뒤늦은 용기였고, 모든 끝은 결국 포기였다. 체념하지 못하고 애처롭게 갈구하는 사랑이 이별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눈빛과 포옹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은 사랑이고, 그 끝은 속절없는 후회였다. 인간은 욕망의 산물이지만, 그 어떤 진했던 순간보다 그리워지는 건 다정한 그의 음성과 언어, 당연한 듯 맞잡았던 고작 두 손. 내 평생을 그에게 바칠 줄 알았는데, 나의 생이 방황한다.

내가 걸어왔던 길마저 변해버리지 않았을까. 어디로도 발을 내딛지 못하게 만들었다. 확신에서 만약으로 흐트러진 나의 신념은 내가 가졌던 고정관념이었을까. 겁에 질려 초점을 잃은 눈빛은 그를 향한 공포보단 길 잃은 어린 양에 가까웠다. 그저 바친 나의 청춘이 허무했고 잃은 목표가 허탈했다. 일그러진 표정의 이유는 더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음이 아니라, 날개달린 새처럼 날 수도, 저 바다처럼 푸를 수도 없는 나의 방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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