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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life

영원의 존재

by 순애_ 2024. 9. 30.

영원을 믿는 사람은 구태여 영원을 말하지 않는다. 오직 영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만이, 혹은 의구심을 품은 사람만이 영원을 말한다. "당신을 사랑할게, 영원히."라는 말은 영원에 대한 믿음보다 그러고 싶은 바람을 훨씬 더 많이 함의한다. 그럴 수 없음을 알면서도, 막연히 그럴 수 있을 것도 같은 마음이 드는 것. 영원의 가치란 그곳에서부터 파생된다.

다시 말하자면 영원한 사랑을 말하는 일은, 이성으로 이해하는 개념을 뛰어넘는 일종의 초월성을 갖는다. 사랑의 본질에는 초월성이 있다.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세계에 의구심을 품게 된다. 이게 맞나? 예전에도 이랬나? 이렇게 빨리? 내가 이렇게 변한다고? 같은 사유를 끊임없이 하게 된다. 나의 세계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확장된다. 조금 더 사랑할 때마다 기존의 세계를 초월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구성한다.

나는 영원을 불신한다. "사랑에 기한이 있다면, 만 년으로 하겠소."라던 주성치의 대사가 절절히 다가온 것도 그 때문이다. 만 년이란 인간의 개념으로 거의 영원에 가깝잖은가. 만 년의 사랑이란 영화라는 세계 안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일 것이다. 현실에서 그런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 다만, 기꺼이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 순간, 사랑은 그런 잘나의 순간이 켜켜이 쌓여 완성된다.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가치가 있다.

나는 애인과 그런 순간 들을 아주 많이 만들고 싶다. 영화라는 세계 안에서 영원이란 말이 통용될 수 있다면, 기존의 세계를 아득히 초월한 어떤 세계에서도, 얼마든지 통용 될 수 있을 거였다. 애인을 많이 사랑하는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때의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하는 바람에, 네 손가락이나 무릎이 겨우 한 귀 퉁이에 나온 사진까지 남김없이 저장했었지. 그런데 이제 그것들은, 그저 구도를 잘못 잡은 엉성한 사진으로만 느껴진다. 그토록 사랑했던 것들이 내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는 지난 사랑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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