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자주 우울하고, 자주 비틀거립니다. 가끔 위험할 때도 있지만 다행히 선을 넘지는 않습니다. 다들 걱정하다시피 대부분 가난한 사랑을 했습니다. 자주 상처받았고 늘 무너진 상태로 감정의 끝 바닥에서 기어다니곤 했습니다. 누군가 손 내밀면 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손을 잡고서는, 조금만 불안하면 금세 손을 놓고 혼자 숨어버리곤 했습니다. 사랑 받는 것이 서툴렀고 사랑 주는 것에만 익숙해서, 상대를 자주 질리게 만들었고 덕분에 자주 버려졌습니다.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인지 제 감정은 항상 위태로웠고, 마음을 너무 잘 주어서인지 늘 공허한 상태로 살아갑니다. 저를 벌하는 게 일상이고, 제 손으로 저를 꼬집어가며 하루를 버텨내라 고함치는 게 제 삶이고요.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아무래도 저는 행복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음먹고 시작한 사랑은 잘 되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친절함을 베풀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것들이니까요. 사람들은 너무 쉽게 저를 상처 입힙니다. 그게 싫어 숨어버리면 저는 죽을 때까지 혼자일까 봐 두렵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굳게 다짐하고 손을 뻗어보면 잡아주는 손이 없고, 심지어 손에 잡히는 것도 없습니다. 사는 게 참 힘이 듭니다. 원래 이렇게 힘든 거던가요. 아님 저만 유독 힘든 걸까요. 가끔은 저도 제가 싫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제가 사랑해주지 않아도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없다 해도 뭐 어쩌겠어요. 제가 이런 걸.
청춘이 다 무슨 소용이렵니까, 그래봐야 언젠간 무너져버릴 하늘을 겨우 붙잡곤 숨을 연명하고 있는 것을. 푸르던 하늘도, 사랑했던 이와 몸을 섞으며 영원을 약속하던 시간들도 달디 달던 솜사탕의 맛도 결국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청춘은 왜이리 아픕니까? 모두가 이런 아픔을 숨기고 사랑하는 겁니까? 이 모든 아픔을 전부 감당하고도 사랑할 만큼 청춘은 푸릅니까? 분명 내가 사랑하는 건 퀴퀴한 냄새가 잔뜩 베인 매트리스와 빛바랜 꽃무늬 벽지가 아닌데도 그날의 공기가 자꾸만 날 먹먹하게 합니다. 이건 무언가요? 그리움입니까, 청춘에 대한 사랑입니까. 한때의 고통도 지나보면 청춘이라는 이름의 추억이 되어 버린다던데 난 내가 어릴 적의 사무치던 고통을 영원히 잊지 않길 바랍니다. 이 시간들을 적어도 나는 기억해야 하니까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이 순간을 나마저도 알아주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올까봐서 말입니다. 너무나도 아팠던 순간들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아주 잔인한 일임이 분명하지만, 청춘은 그런 고통마저도 동경하게 합니다. 우매한 늙은이들은 청춘이란 이름 뒤에 숨어 자꾸만 불행을 동경하려 들고요, 청춘이란 작자는 우리로 하여금 자꾸만 젊음이란 아름다움에 홀려 그만 서슬퍼런 가시에 온 몸이 찢어지는 것도 모른 채 어린 장미를 끌어안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무섭습니다. 감히 내가 사랑하는 것 이 가난일까봐요, 영원할 줄 알았던 불행일까 봐, 빠지지 못할 매트리스의 퀴퀴한 냄새일까 봐. 내가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쳤던 것들을 청춘이라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난 청춘이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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