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riting/love

내가 순응한 사랑

by 순애_ 2024. 11. 1.

나는 사랑 앞에서 자주 넘어지는 애였다. 사랑은 얼마간 2인 3각 경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어깨에 팔을 두른 사람과 발을 맞춰 적당히 적당한 속도로 나아가야만 발이 꼬이질 않는데, 그 사실을 자꾸만 잊어버렸다. 사랑 앞에 넘어진 나는 생각한다. 결승점도 등수도 없는 달리기에선 빨리 달리는 게 아니라 오래 달리는 게 중요하다고. 다시 일어난 나는 말한다. 당신과 좀 더 나란히 달리고 싶다. 당신은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지나고 나서야 쓰린 걸 알아차린 까진 무릎은 놔두면 조만간 나을 것이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야. 나는 생각한다.

당신의 불안이 꿈속까지 따라가 많은 것을 뒤흔들어 놓는 날. 그때마다 나는 마음을 다잡는다. 어디서부터 당신을 다독여야 하는지와 어떻게 다독일지 방법을 찾고, 그 불안이 나를 지치게 하진 않을지 걱정할 당신을 위해 단단한 마음을 꺼내어 증명해 주는 일. 세상 모두가 등을 돌려도 나만큼은 조금도 돌아서는 발 모양새를 하지 않겠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일. 물론 이런 나 또한 당신 불안에 속할 때가 있지. 굳이 왜 당신에게 마음을 전부 쏟아내는지. 왜 사랑을 해도 하필 꼭 불안정을 품고 사는 게 버릇인 당신을 사랑하냐 물었던 그날 밤처럼. 혹, 또 한 번 그날이 오면 똑같이 말해줄게.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자리 잡아 깨닫게 되는 일이며, 나는 그 사랑에 순응했을 뿐이라는 걸. 결국 이 모든 건 내가 당신을 위해 하는 일이자 나를 위해 하는 일이라는 걸. 나는 당신의 찰나가 되고 싶지 않아. 당신과 나를 이어 붙여 계속 우리로 살고 싶은 마음. 이게 내 사랑이야.

사랑하면 지키고 싶은 게 많아진다. 지키고 싶은 게 많아지면 필사적이게 되고, 필사적이란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하는 얼굴이란 좀 아름다운 구석이 있다.

'writing > lov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 그 이상 구원  (0) 2024.11.08
존재가 빛인 사람  (0) 2024.11.06
우산 없는 척 할게  (1) 2024.10.31
참사랑  (0) 2024.10.28
결국 또 사랑  (2) 2024.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