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라는 말보다 나도라는 말이 더 쉬웠던 사람. 미안하다는 말을 못 해 죄 없는 손톱을 물어뜯었던 사람. 온통 무심함이 가득한 채 나를 많이 사랑하던 사람.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내내 중얼거렸던 사람. 나는 그에게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그를 보면 살아졌다. 그는 얘기했다. 오늘이 오늘이라 좋다. 오늘의 너를 볼 수 있어 좋다. 오늘의 네가 여기 있어 좋다. 그의 말은 특별했다. 그였기에 소중했다. 그가 한 말이라,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그라서.
나는 종종 봄날에 피었다. 푸른 청춘이었고, 남들은 나에게 한창 좋을 나이라는 말을 많이 했지만 틈만 나면 나는 꺾였다. 삶이 무서웠고 주어진 생이 어렵다는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주 목소리를 숨겼고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그를 보면 숨이 쉬어졌다. 그를 생각하면 꽉 막혀 곪아있던 마음이 트였다. 그와 함께한 시간은 나에게 힐링 그 자체였다. 그는 존재만으로 하루 끝에 내려앉은 위로였다.
그 사람은 스위치를 켜지 않아도 밝아지는 빛이었다. 옷을 따뜻하게 입었음에도 춥다고 느낄 때면 매번 만날 때마다 핫팩을 쥐여주던 그의 손을 생각한다. 겨울에 만났던 사랑. 내내 중얼거리던 말들.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이 말이 참 좋았다. 나는 자주 삶에 무너지는 사람이었고 그는 그런 나를 살게 하는 무엇이었다. 살고 싶게 하는 무엇이었다. 매일 밤마다 내일이 무서워서 울었던 내가 그를 떠올리며 버티다 보니 어느새 깨어 있는 새벽이 짧아졌고, 아침에 눈을 떠 쏟아지는 빛에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괜스레 한 번 더 웃게 됐다.
그 사람의 목소리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난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음성은 없던 바람에서도 빛깔을 느끼게 했다가, 가끔 눈물겹게도 했다가, 혹은 나의 기승전결을 모조리 뺏어버리기도 했다. 나는 은, 는, 이, 가처럼 그 옆에 나를 지웠다가 다시 썼다가 그리고 그의 숨소리에 섞인 음성의 사금을 몇 줌 훔치다가 그 목소리에 내 주파수를 맞춰도 보다가 문득, 이 목소리로 내 이름 한 번만 나긋하게 불러주면 나는 더 바랄 것 없겠다고, 내가 다 침몰해도 좋겠다고. 목소리가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예쁘게 쓰인 문장을 목소리로 들려 주는 것은 더 큰 기억을 남겼다.
그 사람은 어느 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이런 감정이 처음이라 어쩔 줄 몰라 서툴다고. 자기도 자기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바보 같지만 노력할 테니 조금만 봐 달라고. 사랑, 잘 몰라 잘 말하지 못하던 사람이 완벽하지 않게 내뱉은 몇 구절의 솔직함은 사랑이 듬뿍 담긴 프러포즈 뭐 그런 비슷한 사랑해라는 말이었음을 나는 알았다. 그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밤과 그라서 가능했던 수많은 아침. 오늘의 내가 살아있는 이유에도 그는 당연히 포함되고,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마음에서조차 성실히 기웃대고 있는 그는 무척이나 다정한 사람이자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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