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의 연애를 되돌아보면 좀 건강하질 못했다. 그건 내가 가지고 있는 연애관의 문제였다. 그러니까 애초에 근본부터 조금 어긋나있던 것이다. 나는 서로의 생에 깊이 관여하는 연애, 서로에게 서로의 생을 얼마간 위탁하고서 자아의 일부분을 잘라내 서로의 안에 구겨 넣는 연애를 해왔다. 누군가 내게 의지하고, 내가 없으면 곧 죽어버릴 것 같단 말을 들으면서 나의 쓸모를 실감했다. 쓸모의 실감. 내 연애는 오직 나의 쓸모를 확인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건강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사실은 이런 자각도 없었다. 애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꿈에서 깨어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꿈인 것을 알아채는 것처럼, 나는 애인을 만나고 나서야 그간 해온 연애가 조금 잘못된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무렵의 내겐 그것이 최선이었으므로, 알게 되는 것과 후회는 그 결이 좀 다르다. 애인은 내게 결코 필요 이상으로 의존하지 않고, 내가 없으면 죽어버릴 것 같지도 않다. 얼마간 힘들겠지만 결국 잘 살 것이다. 나는 이제 그 사실이 슬프지 않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긴다. 우리의 연애는 나란히 나아가는 평행선 같다. 완전히 포개어지진 않지만, 아주 가까운 거리에 나란한 평행선. 궤도가 비뚤어지지 않는 이상 우리가 엇나갈 일은 없을 거였다.
나는 상대에 빗대어 나의 쓸모를 확인하는 대신, 스스로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좀 더 근사한,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건강한 정신을 수반한다. 전제조건인 셈이다. 건강한 정신이라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와는 영 인연이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요즘의 나는 오로지 행복과 즐거움을 위해서 연애를 한다. 새벽녘 걸려오는 죽겠다는 전화보다, 애인의 웃음이 이젠 나를 더 살게 한다. 웃는 게 예쁜 애인을 사랑하게 되어서 다행이다. 덕분에 나도 얼마간 예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diary/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