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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love

사랑의 비대칭성

by 순애_ 2024. 8. 17.

시작하는 연인에게 도래할 수 있는 가장 큰 비극은, 사랑이 통상적인 시간의 영향을 받아 자라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러니까 어떠한 경우에도 둘의 사랑은 결국 비대칭일 수밖에 없으며, 대개는 더 많이 사랑한 쪽이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사랑이란 희생과 감내, 대가 없이 쏟는 마음에 그 가치가 있으므로, 일견 불리하다는 말과는 동떨어진 개념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더 많이 사랑해본 사람은 안다. 더 많이 사랑함으로 인해 내 사 랑이 얼마나 불리하고 위태로운 벼랑에 내몰리는지를.

연인을 향한 사랑은 커다란 장력을 가져서, 붙들어 누르지 않으면 그 힘이 다할 때까지 막무가내로 팽창하는 성질을 가졌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힘으로 붙들지 못하면 힘을 다한 사랑은 저 혼자 한계점에 도달했다가 빠른 속도로 수축하기도 한다. 아니면 폭발해 산산이 비산하든지. 수축의 끝에 남는 것은 안정적인 중력을 가진 견고한 별이 아니다. 수축과 사랑은 그런 식으로 상호작용하질 않으니까.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무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소멸하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같은 세기로 붙들어줄 사랑을 갈구한다. 필연적인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랑의 가변성은 무한히 변덕스러워서 결코 대칭으로 존재할 수 없다. 팽창하는 사랑이란 위태롭고 무용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임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보통의 팽창하는 사랑은 이런 연유로 안정적일 수 없다. 보상받지 못한 사랑은 자꾸만 팽창하는 마음이 두렵다.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사랑은 자꾸만 티가 난다. 티를 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티를 낼 수밖에 없는 애석한 숙명을 타고났다. 애초에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불가해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 가. 채근하지 말자고, 서운한 티를 내지 말자고 되뇌어봐도 효과는 잠깐뿐 이다. 결코 지속되질 않는다.

어째선지 사랑으로 배운 것들은 금세 잊어버렸다. 이런 행동이 우리 사랑을 해치고 있단 사실을 알면서도, 끝내 행할 수밖에 없는 끔찍한 운명을 부여받는다. 운명이란 얼마나 얄궂은가. 어째서 더 많이 사랑한단 사실이, 우리의 사랑을 수축과 소멸로 내모는가. 내 손으로 사랑의 목을 조르는 경험 은 끔찍이도 끔찍하고, 지나치게 지나쳐서 사랑을, 나를, 내부로부터 명백히 무너뜨렸다. 그렇기에 이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마침내 안정기에 접어든 모든 사랑에 나는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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