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지를 무너지게 할 만큼 무더웠던 여름이 있었지만 꼭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할 만큼 찬란했던 여름도 있었다 삶의 의지를 녹아내리게 만들었던 여름이 있었기에 작디 작은 것들 사이로도 우리는 행복을 볼 줄 알게 되었다 그래, 모든 상황을 낭만의 장치로 취급해버리자 그 무더운 여름은 나를 죽이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라고 단지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무수한 순간들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그렇게 말이다
너를 닮은 것이라면 나는 늘 곧잘 사랑해 버리곤 했다 가끔은 외로움을 이기지 못 해 가벼운 사랑을 했다 불안정한 것이나 건강하지 못 한 것들에게 쉽게 눈길이 갔다 순간 머물다 떠날 마음을 다정으로 착각해 마음을 베이기가 일쑤였다 네가 없는 여름 동안 나에게는 의미 없는 사랑만이 늘어갔다 여름이 남겨두고 간 것을 다음 해 봄이 되어서야 꺼내어 보는 습관이 생겼다고 내가 말한 적 있던가, 나는 달라진 게 없다 네가 떠난 그 해의 여름은 벌써 세 번의 봄을 지나쳤는데도 나는 여전하다
사실 여름의 흔적을 봄에 들추어보는 습관은 내가 비로소 무뎌졌다는 것의 증명이라고 여겼다 이제는 모든 것이 괜찮아졌기에 지난 추억을 들추어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할까 지난여름의 흔적들을 꺼내어 볼 때마다 나는 내심 이번 여름에는 네가 와주길 바라는 기도를 했다 그래, 무뎌졌기 때문에 지난 여름을 들추어본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너는 이번 여름이 닥치기 전에 왔어야 했다 내가 이번 여름에 잠식되기 전에 너는 나에게로 왔어야 했다 사실 나는 줄곧 네가 보고 싶었다
diary/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