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떻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날들을 보내고 있는 요즘, 삶에 대하여 비관적인 생각뿐입니다. 탄생조차 내 뜻대로 원한 일이 아니었는데 죽음 또한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때가 떠오릅니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뜻대로 할 수 있게 두었어야 공평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떤 두 사람의 결실이 탄생이라는 말로 아름답게 포장되는 일이 때때로 구역질 나기도 합니다.
삶을 소중하게 다루지 않고 이렇게 허투루 써버려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제 글을 발견하고 읽고 계신다면 제가 바라던 일이 당신께서는 우려하던 일로 벌어졌을까요? 저는 제가 원하던 일을 이룬 것이니 더 이상 염려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무탈하고 평안한 삶을 지내려 떠났을 뿐이니까요. 큰 보탬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바라던 만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무엇 하나 야무지게 하지 못하고 매번 걱정만 끼쳐 죄송합니다. 끝까지 속 썩여서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죄송해야 할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지금 이렇게 글을 적는 이 시점의 마음은 그렇습니다. 이 선택 또한 이해받지 못하겠구나 싶습니다.
물질적 풍요와 감정적 풍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해야 된다면 감정적 풍요를 택할 겁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을 어느 누구의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롯이 저의 의지였고 저의 그릇이 작음을 탓할 뿐입니다. 배불리 밥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한 품에 안겨 배부른 감정을 더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항상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거든요. 비싸고 예쁜 것들에 집착했던 것 또한 같은 이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떠날 때 다 짊어지고 갈 수 없음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지만요.
헛헛한 마음을 스스로 채우려 무던히 노력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 포기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안락한 흔들의자에 앉아 따듯한 벽난로를 쬐며 군고구마를 먹을 수 있는 그런 집이나, 한여름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널찍한 평상이 있는 푸르른 느티나무의 그늘 아래 같은 쉼터 같은 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순간순간들이 마지막까지 너무 간절했으니까요. 해질대로 해진, 지칠대로 지친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외로움에 허덕이며 공허함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질 못했습니다.
콩 심은 데 콩이 나야 되는데 팥이 나버려서 이렇게 애먹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던히 노력해야 겨우 행복한 사람 축에 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었고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아 괴로웠습니다. 하나하나 일일이 나열하며 설명할 수는 없지만 숨 쉬는 채로 전달해 봤자 마음에 닿지 않는 것 같아 삼키고 또 삼켰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적어 내려간 글조차도 그저 하얀 종이 위 까만 글씨 정도로 치부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제 최선이라 정말 죄송합니다. 끝까지 약해빠진 나약한 모습이라 죄송합니다. 제가 감정이 너무 메마른 것일까요. 아님 세상이 너무 감성적으로 변한 것일까요. 잘 하는 게 없습니다. 부정적인 말뿐이라 죄송합니다. 삶의 기준점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여기도 저기도 제가 낄 자리는 없습니다. 겨우 붙어 있는 숨마저도 언제 끊어질지 모르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매일매일 바라고 있습니다.
삶의 문턱에 서서 한줄기의 희망을 바라도 될까요. 온전한 상태로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갈 수 있을까요. 죽을힘을 다해 기껏 이 길을 걸어와놓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두려워 다시 되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제 부탁을 한심하게 여기진 않으시겠죠. 당신은 하루라도 더 살기를 바라실 테니까요. 하찮은 목숨일지언정 죽느니만 못한 삶은 없다고 말씀하시겠죠. 부디 바라옵건대 지금보다는 티끌만큼의 더 나은 삶을 살테니 이 문턱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해주세요. 제가 온전한 상태로 이곳을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
diary/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