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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love31

사랑스러운 것들 화려한 겉치레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잔잔하고도 진심어린 것들을 사랑하고 있어. 빨간 지붕 포장마차에서 너와 먹는 뜨거운 우동과 어묵, 탄산이 다 날아가 버린 미지근한 맥주, 꽃잎이 두세 개 떨어진 채 내게 전해져 온 귀여운 꽃 한 송이. 그걸 쪼르르 들고 왔을 생각을 하니 너도 참 여전하고 순수해. 어쩌다 보니 조용하게 얼굴을 마주하고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우리. 오늘 하루 무척이나 힘들었을 텐데, 내 안부를 먼저 물어줘서 고마워. 네가 없을 땐 하루가 의미 없이 빠르게 지나간다며 투덜거리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어. 끈적이게 더운 여름도, 낡고 헤진 것들도, 끝이 너덜거리는 편지지도 나는 사랑할 수 있게 됐어. 원래 진짜 사랑은 .. 2024. 9. 20.
사랑의 본질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4. 8. 21.
사랑의 비대칭성 시작하는 연인에게 도래할 수 있는 가장 큰 비극은, 사랑이 통상적인 시간의 영향을 받아 자라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러니까 어떠한 경우에도 둘의 사랑은 결국 비대칭일 수밖에 없으며, 대개는 더 많이 사랑한 쪽이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사랑이란 희생과 감내, 대가 없이 쏟는 마음에 그 가치가 있으므로, 일견 불리하다는 말과는 동떨어진 개념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더 많이 사랑해본 사람은 안다. 더 많이 사랑함으로 인해 내 사 랑이 얼마나 불리하고 위태로운 벼랑에 내몰리는지를. 연인을 향한 사랑은 커다란 장력을 가져서, 붙들어 누르지 않으면 그 힘이 다할 때까지 막무가내로 팽창하는 성질을 가졌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힘으로 붙들지 못하면 힘을 다한 사랑은 저 혼자 한계점에 도달했다가 빠른 속도로 수.. 2024. 8. 17.
구원이란 꿈 내가 세상을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후세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대단한 위인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나 너 하나에게만큼은 구원이고 싶은 꿈이 있다. 세상의 풍파를 모두 막는 방파제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 나의 야망은 그저 희생이 꿈이었던 듯 하다. 세상을 듣고 보고 자라서 어느샌가 나는 풍파에 같이 무너졌다가도 일어나는 강인함과 난간에 서있는 너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는 그런 구원을 꿈꾼다. 예쁘게 꾸며진 낭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한 순간의 손길이 구원이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책임이 따르고, 누군가의 원망이 따름에도 너와 나를 동일시하는 것. 바닥까지 가더라도 함께 추해지겠다고 다짐하고, 그 고통과 인내가 원래 나의 것이었다는 듯 감수하는 것. 나를 향한 너의 사랑을 바라는 것이 .. 2024. 8. 7.
사랑과 다정의 관계 사랑하기 위해서 존재함을 알아야 한다면 다정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랑과 애정, 다정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연장선상에 있다. 이를테면 위상동형이다. 사랑에는 다정함이 수반된다. 다정하지 않은 사랑은 이제 내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십 대엔 불 같은 사랑을 지향했었다. 관계를 불태우고 건조하게 만드는 걸로는 도저히 모자라서 걸핏하면 서로의 생에도 뜨거운 불길을 놓기 일쑤였다. 그렇게 다 태우고 나서 까맣게 된 폐허에 서면 그제야 내가 살아있음을 실감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게 사랑인 줄 알았다. 서로의 생에 검고 납작한 검은 얼룩을 여기저기 남겨놓는 거. 기꺼운 마음으로 검은 얼룩을 안고 살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조금 다른 가치를 보게 됐다. 이제 내게 사랑이란.. 2024. 8. 6.
사랑이란 신 내가 사랑하는 것, 이를테면 당신의 목소리, 손짓 하나하나가 환상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탐탁지 않아 하겠지만, 나는 불안하니까. 나는 당신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아니까. 시뮬레이션을 그날이 올 때까지 돌리는 거야. 아무 소용 없는걸 알면서도 계속 돌리면 나아질 거라는 멍청한 희망을 가지게 되니까. 당신이 나를 사랑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뭐였어? 나는 당신의 다정함이 참 좋았어. 짓밟아도 기꺼이 자라나는 괴물 같은 결핍들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나와는 달라서, 당신의 도처에 깔린 다정한 말투 말고, 그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문장들. 살가웠고, 우연 같지 않았어. 그래서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하나씩 문을 연 거야. 거짓말처럼 당신이 바라는 대로 된 거야. .. 2024.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