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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했던 착각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4. 9. 20.
사랑스러운 것들 화려한 겉치레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잔잔하고도 진심어린 것들을 사랑하고 있어. 빨간 지붕 포장마차에서 너와 먹는 뜨거운 우동과 어묵, 탄산이 다 날아가 버린 미지근한 맥주, 꽃잎이 두세 개 떨어진 채 내게 전해져 온 귀여운 꽃 한 송이. 그걸 쪼르르 들고 왔을 생각을 하니 너도 참 여전하고 순수해. 어쩌다 보니 조용하게 얼굴을 마주하고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우리. 오늘 하루 무척이나 힘들었을 텐데, 내 안부를 먼저 물어줘서 고마워. 네가 없을 땐 하루가 의미 없이 빠르게 지나간다며 투덜거리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어. 끈적이게 더운 여름도, 낡고 헤진 것들도, 끝이 너덜거리는 편지지도 나는 사랑할 수 있게 됐어. 원래 진짜 사랑은 .. 2024. 9. 20.
20230914 한 때, 여름에 관한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그때는 이 모든 게 순간 지나갈 나의 어린 마음이라 생각했다. 가만히 감정을 배출하는 방법을 몰라 글을 씀으로써 해소하는. 실제로 글을 쓰면 그나마 그리움이 덜어지곤 했으니까.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하다. 달라진 게 없다. 시간이 지나면, 해가 거듭되고 스물이 지나면, 그러면 다른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열 아홉의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너는 왜 그토록 여름을 닮았는가. 덕분에 나는 여전히 여름을 서성인다. 여전히 여름을 그리워하고, 여전히 여름에 관한 글을 쓰고. 때 아닌 겨울에도 코 끝에 네가 쓰던 향수 냄새 스치면 눈물이 핑 돈다. 목이 메여오고, 눈 시울은 붉어지는데 입조차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낮게 네 이름을 읊는.. 2024. 9. 20.
당신의 부재는 곧 멸망이라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4. 9. 17.
눈 오는 소리 겨울에 삿포로에 가봤냐는 너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고 너는 호박색 눈을 빛내며 그곳은 너무 하얘서 마치 세상과 동떨어진 곳 같다고 했다 또 그곳은 너무나도 조용해서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나는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눈이 내릴 때 소리가 난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 없지만 네가 그렇다고 하니 그냥 믿기로 한다 네가 어느 곳에는 사계절 내내 능소화가 피어있다고 말해도 나는 그걸 믿을 거다 어떤 나라에는 사계절 내내 눈이 내린다고 말해도 어떤 도시에는 매일 비가 그치지 않는다고 말해도 나는 네가 말한 것이니 그냥 믿기로 했다 나는 가끔 서운함을 몰래 삼키는 날이면 말 없이 자고 있는 네 손을 만지작거릴 때가 있다 너의 청춘의 의미도 나일 때가 있는지 혼자 가늠해보곤 한다 내가 스물 다섯에.. 2024. 9. 17.
20230616 변했나. 변하지 않았나. 우린 꼭 그런 것들을 생각했어. 마치 우리가 계절 그 자체인 것처럼. 너에게 보답을 하려면 내가 행복해져선 안 되나, 겨울을 지나 봄으로 가면 안 됐나. 아파서 네가 좋아졌고 아파하는 걸 알아채준 너라서 더 좋았는데. 나의 섬세함은 어느새 끝이 닳아간다. 보듬어주겠다 다짐했던 것들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고 허물을 벗겨낼 때마다 움츠러드는 아이가 있으니까. 평생 뒤쫓아도 영영 잡지 못할 것 같은 소매가 있어. 너나 나나 매일같이 처음 보는 분신들을 탄생시키니, 줄어들지 않는 간극은 당연하겠거니 하지. 영원하려면 성장을 멈춰야 한대서, 와중에 네가 지어다준 약 처방에 우울이 다 나은 것도 미안해하는 중이야. 바보 같이. 표면적인 우울에 속은 기분이 들 거야, 원래는 나랑은 다른 .. 2024.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