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90 사랑의 정체 지난 일주일간 나는 사랑에 관해 골몰했다. 애초에 적고 싶었던 장면들은 손도 대지 못한 채로였다. 아랫배 부근에서 일정한 온도로 몸을 데우는 허기가 자꾸만 나로 하여금 사랑 근처를 배회하게 만들었다. 사랑의 정체를 조금 더 명백히 밝힐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별안간에 나를 떠난 너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나는 사랑 때문에 자주 아팠다. 바느질이 서툰 바람에 찢겨져 너덜너덜해진 곳을 잘 기워내질 못했다. 그렇게 헐거운 구석을 볼 때면, 가끔 사랑이 좀 쉬운 거였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럼 너를 납득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또 슬퍼진다. 사랑도 요리나 가구를 조립하는 일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와 방법이 명시된 설명서가 있다면 어떨까. 사실은 사랑이란 게, 상대와 상관없이 늘 .. 2024. 9. 29. 20231215 이별을 겪을 때 흔히들 '떠났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두 사람이 동시에 사랑의 시절로부터 떠날 수도 있을까? 이를테면 협의 이혼 같은 거. 그러나 대부분의 이별은 필연적으로 한 사람이 남겨지는 형태를 취한다. 남겨진 나는 생각한다. 우린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오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다. 덕분에 아무것도 하질 못했다. 이별하면 응당 무기력하기 마련이라, 기한 내에 넘겨야 할 것들을 다 미뤄버렸다. 예전의 메시지를 올려다본다. 이별 직전 말고, 좀 더 위로, 위로, 그 애가 지금보다 다정했던 때로. 그 무렵 나눈 대화들은 너무 소중해서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정갈하게 정돈해서 간직해야지, 마음먹는다. 구백칠십만자. 그중에 날짜를 빼고, 이름을 빼면, 우리가 나눈 .. 2024. 9. 29. 20220831 카페 한편엔 사용되지 않는 의자와 테이블이 짐짝처럼 쌓여 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을 지키기 위해 테이블 간 간격을 벌리려다보니, 자리에서 밀려난 테이블과 의자가 저렇게나 많았다. 쌓여 있는 의자와 내가 앉은 의자가 얼핏 공평한 시간 속에서 다른 속도로 낡아가고 있다. 나는 내 위치를 가늠한다. 삶의 변두리 어디쯤 밀려나 있는지. 간격이 벌어진 분자가 기화하듯, 변두리로 밀려나야만 하는 삶도 공허하긴 마찬가지였다. 되는대로 대충 얽어 만든 주체 없는 인생. 내 은하의 중심에 놓인 것들을 생각한다. 아주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인력으로 소멸하지 않을 정도로만 겨우 나를 지탱하는 것들. 비가 오면 자꾸만 무책임하게 증발하고 싶다. 천 광년의 공동. 다시 말해 내가 사는 별은 천 광년의 공허, 그 중심에.. 2024. 9. 26. 20231031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4. 9. 25. 내 여름이자 청춘 서툴고 솔직하지 못 한 나는, 가끔 자고 있는 네 손을 만지작 거릴 때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은 자꾸만 목끝까지 차오르는데 내뱉을 줄을 몰라 입 안에서 사탕처럼 굴리기만 하다 끝내 녹아버린다. 내뱉어지지 못 한 말은 혀 안에서 그대로 즉사하는데, 그 말들의 마음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나를 괴롭힌다. 입 안에서는 감정들의 단내가 풍긴다. 미처 전해지지 못 한 감정들의 단내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종종 네 모든 것 하나하나에 감정이 일렁이는 나를 보며 내가 사랑 때문에 삶을 다짐하기도 하는 사람이었구나 느꼈다. 이런데 네가 내 청춘이 아니면 뭐겠니. 스물 둘의 뒤를 돌아보아도 여전히 네가 있을까. 그 때에도 내 청춘을 여전히 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을 깨닫게 될까. 어쩌면 그때도 나는 .. 2024. 9. 23. 20240923 이상하게도 너는 모든 계절에 존재한다. 난 사계마다 여름을 앓고, 지독한 여름 장마가 돌아오면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다. 고요한 밤이면 빗소리가 괜히 더 크게 울려퍼지는 듯 해 괴로워서 불면증은 더 심해지기가 일쑤다. 나는, 너랑 있을 때면 뭐랄까. 손금을 다 풀어헤치고 다시 조합해버리고 싶다는 그런 우스운 생각을 종종 하기도 했다. 너는 봄 같은 사람이지만 이상하게도 먹먹한 여름 같다. 꽃이 잔뜩 하늘에 휘날리고 사랑의 계절이라 불리는 봄이, 마치 늘 행복할 줄만 아는 너와 가장 어울리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네가 먹먹함을 품은 푸른 여름을 닮은 것 같다. 그냥 막연히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종종 우리가 스물이었던 그 해의 여름을 떠올릴 때면 그 날은 유독 밤이 길곤 했다. 어젯밤에는 여름이 .. 2024. 9. 23. 이전 1 2 3 4 5 6 ··· 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