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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90

이번 생에 함께해줘서 고마웠어 사실 우리에게 전혀 아무렇지 않은 일 같은 건 없었다. 난 외로움을 많이 탔고 너는 아무리 다그쳐도 나쁜 사람이 못됐으니까. 그렇게 서로의 조언을 필요로 한 만큼 견고해질 수밖에. 너와의 우정엔 동트는 새벽이나 담뱃재 같은 게 꽤나 많이 끼어있는데도 희한하게 숨통이 계속해서 트였다. 같이 맥주를 입안에 머금고 숨 넘어가게 웃어대도 여전히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건 기분 탓이었나. 시니컬의 끝을 달리는 우리조차 누군가와는 죽고 못사는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는 변화도 생겨났다. 갈수록 모호해지는 결핍들이라 우린 점점 그것들에 대해 굳이 상의하지 않아도 되게 됐던 것처럼. 또 한 살을 더 먹어도 각자의 문제를 알아서 해결하고 오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그간 얼마나 상황이 최악으로 더.. 2024. 8. 31.
20230414 복잡한 생각들이 나를 덮친다 끝이라는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이미 끝이 보이는 것을 보내지 못 해 질질 끌리는 것이 문제라 말 하나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어느 하나 잡을 수도 없이 빙빙 돌아서 무슨 마음인지 알 수 없다 끝이라는 건 죽도록 싫지만 끝을 내야만 한다는 건 어렴풋이 느낀다 사랑이 맞았을까 아님 우린 그저 서로를 동정하였나 그때의 나는, 무언가 잘못되어간다고 여기면서도, 대체 뭐가 어떻게 얼마나 잘못되어가고 있는지 같은 건 전혀 이해하질 못했다 그저 손쓸 도리 없이 우주 반대편으로 멀어지는 너를 그리고 나를 우리를 황망히 지켜볼 따름이었다 매일 네가 할퀸 상처가 몸 구석구석에 남았다 근데 그게 좋았다 고통의 크기만큼 면죄 받는 기분이었다 비겁하지 감정과 감각은 등가교환할 수 없단 사실을 그때의.. 2024. 8. 29.
20230602 운 좋은 날이네요 푸른 하늘에 구름은 얼마나 태평한지 이 풍경이 나를 거듭 살고 싶게끔 만들어서 여름을 증오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그것이 큰 욕심이었다는 것을 죽음을 폐 속에 집어넣고 알았으므로 그것이 저의 유일한 후회입니다 아, 저는 끝까지 생존을 바라는군요 제 생을 이렇게 만든 주범은 어쩌면 저의 아픔을 잊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들이 내심 속 한편에 죽은 나를 두고 산다고 말하면 죄송합니다만, 그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이 인간은 이미 불행을 넘어 폐허가 되어 버렸거든요 선생, 제가 어디까지 살 수 있을 것 같은가요? 나그네가 걷던 발걸음이 사후의 세계로 향하는 것만 같아 선생에게 묻습니다, 하면 선생은 대부분의 환자를 보듯 다리를 꼬고 앉으며 세상에.. 2024. 8. 28.
20240826 기다리지 말라해도 기다릴 거야 참을 수 있을 거야 내가 모르는 네 모습이 잔혹하게 튀어나와도 나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 나를 죽여도 너에게 있어 나 또한 그런 존재일 테니까 기다림은 곧 사랑의 미학이니까 서로 상처되는 말만 내질러도 돌아올 거라는 믿음 우리는 공통으로 감정에 취약하다는 동질과 연민 그래 모든 건 다르게만 새겨져 어쩌면 그게 이유였겠지 난 너에게 화난 게 아니라 속상했어 고집 부린 게 아니라 창피했어 미웠다고 했지만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어 너 때문에가 아니라 네 눈에 비춰진 내 모습 때문에 자책했어 절망했어 그렇게 죽고 싶었어 말이 많은 아이지만 정작 말해야 할 것들은 죄다 숨기고 있어서 너 혹시 이것마저도 다 알고 있니 조금은 몰랐으면 하는 것들 이상한 말은.. 2024. 8. 26.
20240823 아마, 작년 이맘때 쯤부터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니 나 떠나고 남겨질 나의 여름들에게 천천히 편지를 남겨두자는 마음으로. 유서를 쓰다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다. 남겨질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잠시 오히려 더 죽고 싶어졌다. 외롭다 느껴질 때는 늘 혼자 새벽 산책을 했다. 끊임없이 걷고 또 걸으면서 지나간 후회들에 대한 생각을 하고 계속 울었다. 고요한 적막을 견디기 힘들 때는 시끄러운 마음의 소리들을 정리하기 위해 조용히 글을 썼다. 죽음을 간절히 갈망하는 날이면 꼭 지나간 여름들을 떠올렸다. 나를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자꾸만 마음이 아쉬워져 삶을 다시 붙잡곤 했고. 모든 것은 떠나기 마련이다. 그 사실은 나 또한 그렇다. 내 곁에 오래 머물.. 2024. 8. 23.
20220812 솔직히 말하면 스스로를 내리깍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다. 나처럼 한심한 사람들이 동시대에 여럿 살아 숨쉬고 있으려나. 일찍이 눈을 떠도 두세 시간이고 잠잠히 침대에서 산송장같이 자빠져 있는 사람이 있으려나. 휴대폰을 보다가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또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으려나. 유년 시절 당연하다는 듯 배웠던 양치와 세수, 샤워 그리고 아침밥, 방 청소같은 습관들을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불규칙하게 할 수가 있다니. 연명하듯이 겨우겨우 살아내는 것도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다니. 맘먹은 행동 하나 옮기는 데에만 몇십 분 소요돼서 이쯤 되면 그냥 잠자코 살다 가는 게 최선일 거란 생각까지 들어. 열여덟 때엔 그저 넓은 집 거실 안에 작디작은 내 어둠의 방 하나쯤 키우는 느낌이었는데, 그에 비하면 지.. 2024. 8. 22.